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매트릭스(Matrix) ❺

반듯하고 쾌적한 매트릭스 세계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걸인은커녕 쓰레기 하나 없는 유토피아에선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숨 막히는 유토피아를 파괴하려는 모피어스 일당은 도스트옙스키의 후예일지 모른다. 그들은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의 상징 ‘수정궁水晶宮’을 그토록 증오했던 도스토옙스키를 닮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음습한 ‘네브카드네자르’호는 실제 인간의 삶의 공간을 상징한다. 모피어스와 네오 일당은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지배하는 ‘매트릭스’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아웃사이더이자 ‘마지막 인간’이다. 통유리로 반듯반듯하게 지어진 고층건물들이 질서정연한 가상현실의 거리는 ‘매트릭스’ 세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정작 영화가 보여주는 모피어스 일당이 편입되길 거부하고 저항하는 매트릭스의 세계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반듯하고 쾌적한 거리에는 노숙자도 걸인도 없고 너절한 잡상인도 없다. 당연히 의심스러운 먹거리를 펼쳐놓고 있는 불법 포장마차도 없다. 쓰레기 한점 없다.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도 없다. 이토록 쾌적한 거리를 거울 같은 유리로 짜맞춘 마천루들이 벽처럼 둘러치고 있다.

워쇼스키 감독은 특히 매트릭스 세계의 거울 같은 유리로 도배한 마천루들에 감정이 안 좋은 듯하다. 사이퍼의 배신으로 매트릭스 요원들에게 체포된 모피어스는 매트릭스 세계의 상징과도 같은 유리 건물로 끌려가 취조 받는다. 모피어스 구출에 나선 네오와 트리니티는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건물의 통유리창을 박살낸다.

▲ 네오와 트리니티는 헬기를 동원해 모피어스 구출에 나선다.[사진=더스쿠프포토]
모피어스 구출이 목적인지 유리건물 파괴가 목적인지 헷갈릴 정도로 유리창에 무지막지한 총격을 퍼붓는다. 네오의 헬리콥터에서 탄피가 눈처럼 쏟아지는 아름다운 미장센을 연출한다. 모피어스를 구출한 뒤 아예 헬리콥터를 유리건물에 통째로 박아 버린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여객기를 통째로 박아버렸던 9ㆍ11테러 무슬림의 분노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모피어스 일당은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의 상징 ‘수정궁水晶宮(Crystal Palace)’을 그토록 증오했던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ii)의 후예일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파리와 함께 ‘19세기의 수도’로 불리고 ‘근대의 로마’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부와 권력을 자랑했던 영국은 세계박람회를 기획하면서 세계에 자신의 부와 힘, 그리고 기술을 과시할 혁신적이고 압도적인 건축물이 필요했다. 최단 기간 내에 최소 비용으로 박람회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 요구됐다.

불가능에 가까운 조직위원회의 요구사항에 원예사이자 온실 건설업자였던 팩스턴(Sir. Joseph Paxton)이라는 인물이 해결사로 나섰다. 규격화된 판유리와 철골로 19에이커에 달하는 ‘거대한 온실’을 17주만에 완성하는 신기神技를 선보였다. 세계박람회 수정궁 건설 공로로 작위까지 받았으니 당대 영국인들이 이 수정궁에 얼마나 경탄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는 영국 프로축구 구단의 이름으로도 당당히 자리 잡았다.

‘선진先進’유럽을 동경해마지 않았던 러시아의 청년 도스토옙스키는 당대 세계의 수도라 일컬어지던 파리와 런던을 여행하면서 런던 만국박람회의 수정궁과 조우遭遇한다. 런던 세계 박람회의 수정궁은 도스토예프스키를 경악하게 했다. 그에게 거대한 철구조물을 유리로 도배하고 우람한 느릅나무까지 가둬버린 그것은 전세계 사람들을 하나의 가축 떼처럼 우리에 가두어버린 ‘악마의 집’처럼 보였다. 정체 모를 악마가 내려와 인간의 정신을 정복하고 자유를 말살하겠다는 선언처럼 느꼈다. 아마 도스토옙스키에게 네오처럼 전투헬리콥터가 허용됐다면 수정궁을 향해 기총소사를 감행했을지도 모르겠다.

▲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 냄새나던 풍경이 사라졌다.[사진=아이클릭아트]
수정궁은 온실이다. 온실은 집이 아니다. 집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지만 온실은 온실 속의 풀과 꽃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것을 착취하기 위한 인간의 공간이다. 거대한 축사畜舍는 소와 돼지를 위한 것이 아니고 동물원은 동물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모두 인간을 위한 구조물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만국박람회의 수정궁에 그토록 분노했던 이유도 그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속하고 말살하고 착취하려는 ‘악마’의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의 세계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일 수도 있고, 작게 보면 자신이 속한 집단과 조직일 수도 있다. 국가일 수도 있고 직장일 수도 있다.

우리의 도시도 하루가 다르게 수정궁으로 채워지고 있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던 구멍가게와 닥지닥지 처마를 맞댄 주택가를 밀어버린 자리에 거대한 수정궁이 들어선다. 더 이상 그곳을 ‘스레빠’ 질질 끌고 ‘난닝구’ 입고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드나들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현대’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찬미해마지 않는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곳에서 강제로 인간들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꽃 피우고 열매 맺어야 하는 온실이 꽃나무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낳기만 하면 사라지는 알을 영문도 모르고 줄창 낳아야 하는 닭장이 암탉을 위한 것이 아니듯 번쩍거리는 수정궁이 과연 그 속에서 부대끼고 일하는 인간을 위한 것일까.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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