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정책과 따로 노는 이유

“투기 세력을 좌시하지 않겠다.” 촛불 혁명으로 80%가 웃도는 지지율을 갖춘 강력한 개혁 정부. 그 정부가 선임한 신임 경제부총리의 으름장이다. 당연히 부동산 시장은 위축돼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부동산 시장은 뜨겁다. 왜일까.

▲ 문재인 정부가 합동 투기 단속반을 투입해 부동산 투기 단속을 시작했지만 실적은 없다.[사진=뉴시스]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서라도 반드시 부동산 시장은 안정시킬 것이다. 투기 조짐이 나타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겠다.(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에서)”

“부동산 투기를 좌시하지 않겠다. 최근 서울 등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이는 부동산 시장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2017년 김동연 경제부총리, 첫 경제관계장관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부동산 투기에 칼을 빼드는 장면이다. 우리는 부동산 투기를 죄악으로 치부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부추겨서다. 투기 흐름을 보면 분명 ‘악惡’이다. 투기 목적으로 집을 구매하는 이들이 시장에 몰리면 청약경쟁률이 높아진다. 높은 경쟁률은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다시 새 아파트의 고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린다.

그사이, 유주택자는 더 윤택해지고, 무주택자는 더 처량해진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 건물주’라는 뼈 있는 농담이 사회 곳곳을 파고들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투기를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고질병 중 하나인 ‘양극화’의 근원지로 꼽는다. 투기로 얻은 소득은 불로소득이라 깎아 부른다.

 

물론 투기의 결과가 반드시 악화惡貨만 창출하는 건 아니다. 투기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는 꼭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매력적이다. 투기 억제의 고삐를 조금만 늦춰도 엄청난 규모의 투기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 주택가격을 끌어올리고 이에 힘입어 건설경기가 반짝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부진, 수출 감소 등 경제 침체 상황에서 부동산만 들썩이는 것은 위험 징후다. 자금이 부동산만 ‘편식’한다는 증거라서다.

이 때문에 부동산 시장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두가지로 엇갈린다. “부동산은 특수한 재화니까 공공이 강하게 개입해야 한다.” “부동산도 상품이니까 시장에 맡겨야 한다.” 앞서 언급한 투기에 칼을 빼든 두 정부의 성격은 전자에 가깝다.

의문의 부동산 시장

그런데 두 정부의 부동산 시장은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참여정부를 먼저 보자.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부동산 시장과 싸웠다. 총 30여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내면서 세제ㆍ금융ㆍ공급 전방위에서 시장을 압박했다. 그런데도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역대 부동산 대책 중 가장 강력한 규제로 꼽히는 8ㆍ31 대책(2005년) 이후에도 집값은 상승일변도였다. [※ 참고: 8ㆍ31 대책의 골자는 세제강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시장도 비슷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법원경매 낙찰가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아파트 견본주택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몰리고 있다. 합동 투기 단속반의 활동은 웃음거리가 됐다. 강남 공인중개소들은 ‘임시 휴업’을 하고 이들의 단속망을 손쉽게 빠져나갔다. 그사이 ‘강남 불패’ ‘대마불사’라는 성공법칙은 더욱 굳건해졌다. 당연히 집값은 출렁였다. 두 정부의 정책과 시그널이 시장에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투기가 규제에만 반응하는 게 아니다. 선의善意가 담긴 정책에도 개입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일한 부동산 공약인 ‘도시재생 뉴딜 정책’의 사례를 보자. 이 정책은 전면 철거 방식을 통한 대규모 아파트 공급이 아니다. 노후 주택지에 마을주차장, 어린이집, 무인택배센터 등을 지원해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또한 소규모 정비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낡은 주택은 공공임대주택으로 개발된다.

정부가 점찍은 이 정책의 수혜자는 명백히 ‘서민’이다. 그런데 시장의 판단은 다르다. 진짜 수혜자는 ‘땅주인’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은 이미 투기 재료가 됐다. 노후주택이 많은 강북 집값이 들썩이는 게 그 증거다. 용산지역 아파트값은 이미 3.3㎡당 2551만원으로 강남권인 송파구(3.3㎡당 2558만원)와 큰 차이가 없다.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도시재생 사업 발표 이후 문의전화가 크게 늘었다”면서 “도시재생 사업으로 선정될 만한 지역을 찾아다니는 모양”이라고 귀띔했다.

부동산 투기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정부는 ‘6ㆍ19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골자는 조정대상지역의 추가선정, 서울지역 전매제한 기간 강화, 주택담보인정비율(LTV)ㆍ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재건축조합원 주택 공급 수 제한 등이다. 문제는 시장이 이미 이 정책들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에 맞춰 미리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손을 대는 일에 망설인다. 시장이 얼어붙으면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크게 미쳐서다. 결국 냉각을 막으면서 과열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다 미적지근한 대책을 내놓는다. 반면 시장은 영리하다. 강력한 대책이 말뿐인 것이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탕을 노린 투기 세력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시장에 즉각적이고 강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면서 “시장의 과열과 냉각도 문제지만 투기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룰이 공평하지 않다는 게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제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과 은행에 인생을 저당 잡힌 하우스푸어의 한숨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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