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49) 신세계 부회장이 최근 “이마트 중국 철수”라는 뼈아픈 발언을 했다. 20년 만에 중국 사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니 뼈아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 드림을 접은 대신 베트남 등 동남아나 국내 사업에서 이를 만회하겠다는 복안을 가진 것 같다. 그가 지난 20년간의 중국 사업 실패를 교훈 삼아 향후 사업에서 어떤 길을 걸어갈지 자못 궁금하다.

▲ 정용진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이마트 중국 진출 20년 만에 철수를 선언했다.[사진=뉴시스]
“이마트는 중국에서 나옵니다. 완전히 철수할 계획입니다.” 지난 5월 31일 정용진 부회장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밝혔다. 이날 그는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신세계그룹&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 참석하던 중이었다. 이 밖에도 그는 신세계가 당면한 핵심 현안들에 대한 답변도 쏟아냈다. ▲(실적이 부진한 편의점) 위드미에 대한 놀랄 만한 발표가 한달(6월) 안에 있을 것 ▲(소상공인들의 반발로 난관에 봉착한 부천 신세계 복합쇼핑몰 건립건은 포기하지 않고)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해볼 생각이며, 좀 더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임을 밝혔다.

이어 ▲(‘스타필드 하남과 고양’ 건립 과정에서 여러모로 아쉬웠던 만큼 이후 스타필드를 위해) 처음 생각을 갈아엎고, 다시 생각해 보겠으며 ▲(2014년 ‘비전 2023’ 발표 당시 했던) 매해 1만명 이상의 고용 창출 약속을 지켜 나가겠다는 뜻도 재확인했다. 이날 신세계그룹&파트너사 채용박람회를 연 것은 오는 8월로 개장이 다소 연기된 ‘스타필드 고양’ 인력(약 3000명) 등의 채용을 위해서였다. 새 정부 들어 재계 처음으로 열린 개별 그룹기업 채용행사라 민ㆍ관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정 부회장의 이번 발언을 두고 일부에선 “깜짝 발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거침없는 그의 발언에 신세계 홍보팀이 뒷수습에 진땀을 흘렸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하지만 그의 평소 대對고객 소통 스타일을 보면 이번 발언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에 속한다. 소비 대중이나 시장 관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책임 있게 전달해 길게 보면 오히려 회사에 플러스가 됐을 것이다.

그는 젊은 오너 3세 최고경영자(CEO)답게 평소 SNS를 통해 소비 대중과 소통하거나 자신의 경영철학을 전파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온 기업인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50세다. 신세계 채용박람회를 하루 앞둔 지난 5월 30일 그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사진 한장이 화제가 됐다. “체력믿고 깝치다 결국 탈남”이란 문구와 함께 링거를 맞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과로로 입원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지만 자택에서의 일로 확인됐다. 채용박람회를 앞두고 체력을 추스르려 했던 것으로 이해됐다. 

SNS뿐만이 아니다. 그는 회사와 관련된 각종 행사를 기회로 소비 대중과 곧잘 소통한다. 물론 언론을 통한 경우가 많다. 기자들이 평소 재계 순위 11위(2017년 일반기업 기준)인 신세계그룹 오너 3세 CEO를 만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들로서도 신세계와 관련된 여러 행사를 통해 정 부회장과 소통하고 그 결과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건 반길 만한 일이다. 평소 정 부회장이 이런 소통을 즐긴 나머지 행사 때마다 ‘깜짝 발표’에 비견할 만한 뉴스가 나왔다고 봐야 한다. 

이번 그의 발언 중 단연 압권은 ‘20년 이마트 중국 사업 철수’를 공식화한 것이다. 신세계 안팎에서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던 이 사안에 대해 정 부회장이 처음으로 드러내놓고 인정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20년 만에 중국사업 철수

사실 2년 반 전인 2014년 12월에 이미 그는 '이마트 중국 철수'를 염두에 둔 것 같은 발언을 했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ㆍ아세안 CEO 서밋’ 행사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 중국 사업을 해보니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현재로선 중국 사업을 확대할 생각이 없다. 중국 경험을 토대로 베트남 사업을 펼치겠다.”

당시 재계는 이 부회장이 중국 이마트 사업 실패를 언론을 통해 뼈아프게 인정했다고 해석했다. 국내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할인점 최강자 이마트가 중국에서는 쓴맛을 보고 있다는 혹평까지 나왔다. 그 와중에 그는 중국 대신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해외진출의 새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던 것이다.

그는 당시 “내년(2015년) 말 베트남에 이마트 1호점을 오픈한 뒤 성공하면 라오스ㆍ미얀마ㆍ캄보디아ㆍ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에 진출할 계획이다. 내년(2015년) 2월 베트남에 가서 (1호점 공사) 현황을 살펴보겠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얘기들을 했다. 현재 베트남 등 동남아 사업은 속도를 내고 있다.

부산 벡스코 발언 이후 2년 반 동안 이마트 중국 사업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과감한 구조조정에도 사업 여건은 개선되지 않았다. 후발주자여서 입지 선정을 제대로 못했고, 현지 유통업체들에 비해 가격경쟁력도 뒤져 이래저래 힘이 부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이 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최근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 문제로 중국 내 불매 운동까지 겹쳐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이마트는 1997년 국내 유통업체 중 가장 먼저 상하이에 1호점을 오픈한 이래 한때 중국 매장을 27개까지 늘리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손실이 누적되자 2011년 구조조정에 나서 매장 11개를 한꺼번에 매각했다. 점포를 6개까지로 줄였지만 적자는 계속됐다. 적자가 2014년 440억원, 2015년 351억원, 지난해 216억원 등을 기록하며 최근 4년간 1500억원 이상에 이르렀던 것. 한국 유통업계 대표주자인 신세계가 거대시장 중국에서 철수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재계에 큰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중국 사업을 여러 관점에서 검토한 결과 철수를 결정했다”며 “철수 비용이나 임대계약 조건, 종업원 문제 등을 고려해 철수 가능 점포부터 순차적으로 문을 닫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5월 말 임대가 끝난 상하이 라오시먼점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루이홍점, 무단장점, 난차오점, 창장점, 시산점, 화차오점 등 6개 점포도 차례로 폐점할 방침이다. 신세계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시장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익 구조가 개선되고 회사 전체의 체질이 강화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정 부회장의 발언대로라면 6월 중에 이마트 편의점인 ‘위드미’에 대한 깜짝 놀랄만한 소식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경쟁업체인 CU와 GS25가 잘 나가고 있는데 비해 위드미는 실적 부진과 성장 정체에서 못 벗어난 만큼 그의 처방전이 궁금해진다. 다만, 기업 인수ㆍ합병(M&A) 방식이 아닌 이마트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면서 새로운 성장 드라이브를 걸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상호를 ‘이마트24’로 바꾸고 매장 확충에도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

이마트24 탄생할까 

소상공인들의 반발로 난관에 봉착한 부천 신세계 복합쇼핑몰 건립건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쳐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또 그는 이미 쇼핑몰의 끝판왕이란 얘길 듣고 있는 ‘스타필드 하남과 고양’에서 한발 더 나아간 쇼핑몰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이들 쇼핑몰 건립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교훈 삼아 다음 스타필드에서는 처음에 했던 생각을 갈아엎고 다시 생각한 것을 적용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그가 이마트 중국 사업 실패 등 굵직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신세계를 신세계로 만드는 일에 더욱 매진하리라 짐작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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