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일침과 괘씸죄

▲ 김영배 경총 부회장의 일침을 무시해선 안 된다. 재벌개혁과 재벌혐오를 구분하지 못해선 안 된다.[사진=뉴시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은 40년 가까이 경총에서 근무해온 노사문제에 관한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는 그가 요즘 말 한마디 때문에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지난 5월 25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게 되면 산업현장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마무리는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요소들은 경총이 적극 나서 해소할 것”으로 맺었지만 ‘감히’ 새 대통령의 1호 공약을 비판했다는 괘씸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이 “경총도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 중 한 축”이라고 경고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까지 가세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사태가 커지자 박병원 경총 회장이 김진표 위원장을 찾아가서 머리를 숙이고서야 파문이 일단락됐다. 일회성 해프닝이지만 새 정부의 노동 정책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수석회의를 하는 중 “이의제기를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반론제기는 의무라고 답했다.

그런데 기업 특히 재벌은 죄인이니 조용히 하라는 거다. 재벌을 무시하고 정부 혼자의 힘으로만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재벌협조 없이 정부와 일부 귀족 노조의 힘만으로는 한걸음도 못나가고 일자리 창출은커녕 실업률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먼저 재벌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재벌은 고용과 투자의 주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집권 후 기업인들부터 만났다. 뒷거래하라는 뜻이 아니라 세계무대에 뛰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자는 얘기다. 물론 한국의 재벌은 문제가 많다.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타락한 일부 재벌총수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고 재벌은 개혁돼야 한다.

그렇지만 재벌과 재벌총수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과 그들을 비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재벌회장들이 모두 재벌개혁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부 총수들은 사석에서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다만 제대로 개혁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7.6%이고, 나머지 92.4%는 민간이 만들어 낸다. 최대기업인 삼성전자, 현대차ㆍ기아차가 10만명이 넘는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낙오하면 그 회사의 일자리는 사라진다. 한때 세계 1위였던 노키아(핀란드), 코닥필름(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우조선과 한진해운이 그렇다. 민간기업이 고용을 늘리려면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국제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의 일부라도 구미로 왔으면 좋겠다” 지난해 말 청문회에서 모 국회의원이 던진 말이다. 중국과 베트남에 공장을 건설하는 대기업들이 다시 조국으로 유턴만 해도 엄청난 고용효과가 발생한다. 미국의 실업률 감소는 우연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정부로부터 시작된 ‘리메이킹 아메리카’ 슬로건은 세계 각국에 흩어졌던 생산기지의 본국 회귀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살리기 정책이 시작된 이후 유턴을 결정한 대기업이 100곳이 넘는다. 트럼프는 벤처기업인과 단체 회동을 갖고 대기업 CEO들을 수시로 불러 일자리 창출을 당부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6월말 열릴 예정인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만 논의해서는 트럼프로부터 한국이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트럼프는 명분보다 미국의 실익을 중요시하는 정치인이다. 이런 때는 미국 투자가 많은 삼성전자, 현대차, 두산 등의 기업인이 함께 가서 활발히 비즈니즈를 하고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펀드’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은 그만큼 일자리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는 제스처로 충분하다. 억지로 누르면 재벌이 협조하는 척은 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노사정勞使政이 함께 손을 잡고 나가야 한다. 일자리는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지, 일자리 자체가 목표물이 아니다.

경제개발과정에서 ‘한강의 기적’은 지도자인 박정희의 리더십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가 함께 손잡고 이룩해냈다. 문 대통령이 재계총수들과 만나 기탄없이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은 재계의 손을 잡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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