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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기업의 영업비밀이 법적으로 보호받으려면 정보의 비밀유지를 위한 합리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사진=아이클릭아트]
직원을 채용할 때 회사는 종종 직원과 ‘영업비밀준수 서약서’를 쓴다. “업무상 취득한 기밀사항을 재직 중은 물론 퇴사 후에도 누설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약서다. 문제는 서약서만으로 회사가 기밀을 지키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대법원도 ‘영업비밀준수 서약서’의 가치를 낮게 보고 있다.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는 중소기업의 난제다. 인력 빼가기를 통한 영업비밀 유출은 더 큰 문제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직원과 ‘영업비밀준수 서약서’를 쓴다. 그럼 이 서약서가 중소기업의 기밀을 지켜줄 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이다.

사례를 하나 보자. 기업의 해외행사 시 항공권이나 숙소를 제공하는 여행전문 중소기업 A사에서 이사로 근무하던 박상진(가명)씨. 2014년 대기업으로 이직한 그는 재직 중 습득한 A사의 고객정보 파일을 활용하다가 A사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영업비밀준수 서약서’를 어겼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는 2014년 1심에선 무죄를, 2015년 열린 2심에선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과 2심의 판단이 달랐던 이유는 흥미롭게도 ‘법개정’에 있다.

2015년 개정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 규정하고 있는 ‘영업비밀’은 다음과 같다.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로써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정보다.”
개정된 부분은 매우 단순하다. 2015년 이전 법은 “기업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을 영업비밀에 속하는 정보라고 규정했지만 현행법은 ‘합리적 노력’으로 톤을 낮췄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상당한 노력’이라는 문구는 중소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법원이 ‘상당한 노력’의 전제로 ▲정보 보관책임자의 지정 여부 ▲보안장치 혹은 보안관리규정 존재 여부 ▲정보의 중요도에 따른 분류 ▲대외비 또는 기밀자료라는 특별한 표시 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부정경쟁방지법이 현실을 감안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이유다.

결국 법률 문구가 ‘상당한 노력’에서 ‘합리적 노력’으로 바뀌면서 박씨의 판결도 달라졌다. 2015년 법개정 전에 열린 1심에서 법원은 박씨에게 “A사는 고객정보를 직원 모두와 공유했고, 고객정보에 비밀임을 표시하거나 직원들에게 이것이 비밀임을 고지한 적 없어 해당 정보의 비밀유지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법개정 후에 열린 2심에서 법원은 “A사가 행사정보는 일반인에게 공개했지만 고객정보는 내부 직원에게만 접근을 허용했고, 정보를 작성한 유형에 따라 일반인과 내부 직원의 정보 접근 권한도 달랐다”면서 “A사가 직원 4명, 연간매출액 2억원 정도에 불과한 점까지 감안하면 ‘합리적인 노력’을 다했다”고 판시, 박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법개정을 통해 중소기업의 영업비밀이 더 많은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중소기업에 긍정적인 소식은 또 있다. 지난해 8월 입법예고된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에는 ‘합리적 노력’이라는 문구가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합리적 노력’을 게을리 해도 괜찮다는 건 아니다. 법조계 한편에선 “영업비밀 준수 서약서 한장으로 기밀을 지키려는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대법원도 같은 입장이다.
곽영은 변호사 cherish082@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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