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파티김밥 전문가 김락훈 셰프

파티김밥 전문가인 김락훈(46) 셰프는 김밥 세계화의 기수를 자처한다. 그는 김밥을 한식 세계화의 첨병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밥은 쓰레기를 줄이자는 세계적인 저탄소 이슈에도 부합한다는 그를 만나 ‘김밥 세계화’론을 들어 봤다.

“한 분야를 세계화하려면 간단명료한 이미지의 아이콘이 필요합니다. 한식의 경우 김밥이 이 조건에 최적화돼 있죠. 김밥은 쓰레기를 줄이자는 세계적인 저탄소 이슈에도 부합합니다.”

세계요리월드컵 동메달리스트로 ‘대한민국 신지식인’인 김락훈 셰프는 “김밥은 잔반이 남지 않고 패스트푸드처럼 휴대가 간편할뿐더러 무엇보다 전 세계 모든 음식을 속 재료로 쓸 수 있는 구조적 특성을 지녔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 중엔 일본 스시처럼 단순한 아이콘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음식이 전무합니다. 하지만 김밥은 세계의 다양한 식문화를 담을 수 있어요. 스페인에 갔을 땐 하몬(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시킨 스페인의 생햄) 김밥도 만들었습니다. 김밥은 멕시코와 베트남의 롤처럼 세계적인 래핑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지죠. 독특한 식문화를 더한다면 세계인이 김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반면 스시는 아이콘으로서의 상징성은 탁월하지만 세계의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 김밥을 스시만큼 세계인이 즐겨먹는 음식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요?
“외교력이 강하면 그 나라 식문화를 받아들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국가적 홍보를 통해 해당국의 식문화와 김밥이 섞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김과 밥이 없어도 래핑하는 건 모두 김밥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김밥을 세계화하는 좋은 방법이죠.”

그는 몇년 전부터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미국 등 음식 강국을 찾아 김밥을 홍보하고 있다. 김밥이 한식세계화 대열에서 누락된 현실을 알게 된 후로는 ‘김밥세계투어버스’를 구상 중이다.

✚ 어떻게 해서 김밥에 꽂히게 됐나요?
“소니의 워크맨이 포터블 문화의 상징이었던 25년 전 런던의 일식집에 근무했습니다. 그때 일본인 셰프가 ‘김밥이 일본 음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일본의 강력한 문화가 김치처럼 김밥을 자국의 식문화로 만들어 버린 현실을 목격했죠. 당시엔 부모님의 반대로 요리를 계속할 수 없었지만 다시 시작할 땐 반드시 김밥 전문가 나아가 김밥 1인자가 되어 김밥을 세계가 재조명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고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김밥에 대해 단순히 요리로 접근하면 일본의 막강한 힘에 휩쓸릴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다양한 분야와 결합한 새로운 김밥 식문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한끼 때우기 용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김밥을 하나의 식문화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승산이 있어요.”

그는 1995년 지구를 한바퀴 도는 무전여행을 했다. 이런 스케일의 무전여행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흔치 않던 시절.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 런던의 피카딜리서커스, 도쿄의 신주쿠, 타임스퀘어가 바라다보이는 뉴욕의 일식당에서 일했다. 세계의 중심부에서 셰프로서 경험을 쌓은 셈이다. 공대 나온 엔지니어가 뜬금없이 셰프가 된 것이다.

“엔지니어와 셰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리는 엔지니어링처럼 창의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또 엔지니어링에 대해서는 세상 모든 분야의 중심이라는 시각이 있어요. 소프트하면서도 중심이 되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그게 바로 요리라는 판단을 하게 됐죠. 더 많은 사람을 만나 나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기엔 셰프가 제격이죠.”

✚ 한식이 세계인이 애호하는 음식이 될 수 있다고 보나요? 한식의 강점과 한계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중식, 일식, 프렌치, 이탈리안 등 세계화된 요리를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국력, 역사성 그리고 서양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런 다양한 자산 간의 조화로움이죠. 세계인들이 보는 한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뭔가 건강해 보이는 음식’ 입니다. 대표적인 한식이 건강식으로 널리 알려진 발효 식품이라는 점도 세계적인 트렌드와 일치하죠. 세계화 가능성은 이미 검증됐습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코리안 소울을 담은 고급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어요. 문제는 마케팅과 홍보죠.”

✚ ‘한식 세계화’의 문제점과 한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나요?
“한 국가를 방문할 때 가장 중요한 선택이 음식입니다. 한식 홍보를 국가 차원에서 하고 있지만 대중화 관점에서 보면 성적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한마디로 음식 자체만으로는 세계화가 불가능해요. 음식을 선택하기 전 작용하는 요소로 가장 중요한 게 ‘뭔가 있을 것 같은’ 이미지 입니다. 다음이 레스토랑의 외관과 인테리어, 마지막으로 테이블에 앉았을 때 음식이 차려지는 세팅 환경이죠. 이 순서대로 만족도가 높을 때 한식은 비로소 맛과 더불어 가치를 평가 받게 될 거예요. 바야흐로 문화적 컨버전스 시대입니다. 한식도 다양한 식문화가 어우러지는 퓨전이 돼야 해요. 이를 위해 한 기관이 한식 세계화를 전담하기보다 여러 부처가 지원, 다양한 관점에서 한식을 재해석하고 홍보해야 합니다. 아울러 한식 분야별로 스타 셰프를 양성해야 돼요. 김치, 비빔밥, 빈대떡, 잡채의 최고 전문가가 나와야 합니다. 저는 한식 ‘음식’만으로 승부를 겨뤄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봅니다.”

▲ 김락훈 셰프는 “김밥 마는 손재주가 스시의 마끼를 뛰어넘는 세계적 기술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사진=김락훈 셰프 제공]
✚ 젊은 셰프 지망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뭔가요?
“세계적인 한식 전문가가 되려면 한 분야에 정통해야 합니다. 빈대떡 전문가, 잡채 전문가, 지짐 전문가 등 세부 종목의 장인이 되어야 해요.”

김밥으로 전 세계를 투어하는 꿈을 이루려 그는 ‘락셰프의 쿠킹클래스’를 열었다.

✚ 직업적인 꿈이 뭔가요?
“대한민국에 김밥을 말 수 있는 사람이 어림잡아 1000만명은 될 거예요. 김밥만한 한식 식문화 자산이 없어요. 김밥 세계화에 기여할 김밥 전문가 1000만 시대를 열어 보고 싶습니다. 김밥 마는 손재주가 스시의 마끼를 뛰어넘는 세계적 기술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만들어 내는 게 목표입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요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많아요. 청년과 요리 만학도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 “요리란 나에게 ㅇㅇ이다”라고 할 때 ㅇㅇ를 어떤 단어로 채우고 싶나요?
“놀잇감이요? 실은 그 이상입니다. 저의 삶에 요리가 변화와 즐거움을 주었죠.”
파티김밥 전문가인 그는 지난해 농협 농식품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국산 쌀과 식재료로 만드는 김밥을 통해 쌀 소비를 촉진하고 농산물 판매를 늘리려는 농협의 노림수다.

서울 도곡동에서 락앤파티를 운영하는 ‘락셰프’는 오늘도 ‘김밥 세계화의 기수’를 자처하며 김밥을 만다. 김밥 말기를 그는 재미있는 놀이로 만들었다. 그의 김밥 만들기를 미국 공립학교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으로 채택했다. 아이들에게 그는 김밥 마는 한국 아저씨로 통한다.

“요리 축에 끼지도 못했던 김밥을 만드느라 몇년 동안 외면을 당했습니다. 지금은 김밥을 주제로 농민ㆍ어민 등 식재료 생산자를 비롯해 전국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있죠. 김밥을 통해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공유의 삶을 삽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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