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늘리기 속도전의 부작용

▲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관련 공약은 한꺼번에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세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실천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순리다.[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3주차 키워드는 ‘일자리 늘리기 속도전’이다. 5월 24일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내걸고 직접 시연했다. 매일 상황판을 점검하며 독려할 태세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일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1호 업무지시로 내렸다. 25일 첫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선 10조원 규모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일자리 올인에 압박을 느낀 기업들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5일 직접 고용창출 의지를 천명했다. 지난해 발표한 ‘5년간 7만명 신규 채용, 비정규직 1만명 3년 내 정규직 전환’ 계획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이에 앞서 SK브로드밴드는 6월 하청 대리점 직원 52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은행 등 금융권도 연내 비정규직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파열음이 불거졌다.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비정규직 제로화라는 획일적 목표와 속도전에 우려를 표명하자 청와대가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새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반박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25일 경총 포럼 인사말에서 “회사의 특성이나 근로자의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치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인식은 현실에 맞지 않다”면서 정규직 과보호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 문제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경총은 양극화와 청년실업 문제 등 우리가 안은 모든 일자리 문제에 대해 정부ㆍ노동계와 함께 책임져야 할 분명한 축이고 당사자인데, 이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 없이 잘못된 내용을 가지고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함으로써 정부와 대통령이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일자리 문제가 표류하지 않을까 굉장히 염려된다”고 밝혔다.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경영계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극히 기업 입장에서 나온 아주 편협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일이 새 정부와 재계의 갈등 구조로 번져선 안 된다. 일자리 상황이 최악이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실제로 일자리 문제는 소득격차 확대, 양극화 심화, 소비부진, 결혼기피와 저출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경제ㆍ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와 사용자단체, 노동계,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지 대립해선 안 된다.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재계와 노동계 등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청와대 상황판 숫자에 따라 기업들을 비교하며 윽박질러선 곤란하다.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은 민간 부문의 일자리 창출력이 쇠약해진 상황에서 선택한 궁여지책이다. 10조원 일자리 추경으로 공무원을 더 뽑는 등 마중물을 대도 민간 부문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가 성과연봉제 폐지, 비정규직 제로화,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 노동 관련 대선 공약을 한꺼번에 밀어붙이면 기업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세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단계적이고 실천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노사정이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한다.

재계도 사회 전체가 걱정하는 일자리 문제에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정규직을 채용할 여유가 있는데도 관행처럼 먼저 비정규직을 고용해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부담으로만 여기지 말고 개별 기업 상황에 맞춰 투자와 함께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경영 마인드가 요구된다.

아울러 정부와 재계는 건강하고 공정한 창업 생태계 조성에 공동 노력해야 한다. 대기업 100개 중 80개꼴로 상속받은 것이란 사실은 우리 경제가 노쇠해졌다는 방증이다. 창업의욕과 역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라는 현실은 기업가정신이 바닥이고 좋은 일자리 만들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뜯어고치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경제에 젊은 피를 수혈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상속자의 나라’에서 ‘창업자의 나라’로 바꾸자.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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