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매트릭스(Matrix) ❷

‘배신’은 거의 모든 드라마에 존재하는 단골 코드다. 배신의 코드는 이야기 전개의 양념이나 변주 정도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척추에 해당하기도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도 예외없이 배신자가 등장한다. 출연 분량은 조연에 그치지만 그의 배신이 던진 파문이 영화의 얼개를 구성한다.

 
모피어스(Morpheus)가 이끄는 저항조직의 핵심인물 사이퍼(Cypher)는 기계와의 기약없는 투쟁에 맥이 빠진다. 승리를 기약할 수 없는 투쟁만큼 난감한 일이 없다.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러시아의 무적함대까지 궤멸시킨 ‘대일본 제국’을 상대로 도시락폭탄을 던지던 독립투사들이나 철옹성같은 유신체제에 화염병과 ‘짱돌’을 던지던 민주투사들이 경이로운 이유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프랑스를 점령하고 온 유럽을 호령하는 히틀러의 나치에 맞선 레지스탕스나 세계 최강 미군에 맞서 거미줄같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저항했던 베트콩도 경이롭다. 로마제국에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힌 예수를 추종하는 12제자도 행적도 예사롭지 않다.

베드로 못지않은 신념으로 모피어스를 따르던 사이퍼가 변절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하다. 사이퍼는 매일매일 변함없이 제공되는 멀건 죽사발에 치를 떤다. 희망을 품은 자는 반복되는 멀건 죽사발도 견딜 수 있지만, 희망을 잃은 이에게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은 고문보다 가혹하다.

▲ '배신자' 사이퍼는 욕망에 굴복하기 쉬운 인간의 모습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처럼 워쇼스키(Wachowski) 남매 감독은 영화에 다양한 기독교적 모티브를 동원한다. 배신자가 되고 마는 사이퍼(Cypher)의 이름은 단테(Dante)의 「신곡神曲」에 나오는 ‘타락천사’ 루시퍼(Lucifer)에서 차용한 듯 하다. 루시퍼는 천계天界의 아홉 천사 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며 신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지만 신을 배신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배신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배신은 항상 커다란 신뢰와 기대, 사랑을 받는 인물의 몫이다.

멀건 죽에 진저리를 치던 사이퍼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향한 욕망에 헐떡인다. 유다가 예수를 팔아 넘기고 은화 30냥을 받듯 모피어스를 팔아넘긴 사이퍼는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매트릭스 요원의 스테이크 대접을 받는다. 우아한 레스토랑이나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가 매트릭스 프로그램 속의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사이퍼도 알고 있다.

그러나 사이퍼는 구질구질한 저항군의 ‘현실’보다는 차라리 오감을 만족시키는 ‘허구’와 ‘가상’의 세계를 택한다. 워쇼스키 남매 감독은 자신들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를 호출한다. 보드리야르가 조금은 어리둥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부업으로 컴퓨터 해킹을 하는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그의 고객에게 장 보드리야르의 대단한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 속에 감추어둔 USB를 전달한다. 워쇼스키 감독은 장 보드리야르를 통해 우리가 이미 매트릭스의 세계로 들어섰음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시뮬라크르(simulacre)는 현실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것들을 말한다. 시뮬라시옹(프랑스어ㆍsimulation)은 시뮬라크르가 작용을 의미한다. 시뮬라시옹의 결과물이 시뮬라크르(simulacres)다.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에 불과하지만 너무나 생생하다.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사이퍼에게 자신의 신념과 지도자 모두를 버리고라도 갖고 싶은 타는 듯한 욕망의 대상이 된다.

▲ 매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이미지는 현실보다 생생하게 욕망을 자극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오늘날 대중매체가 쏟아내는 온갖 가상의 이미지들은 현실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 대접받고 현실보다도 우위를 점한다. 오늘날 대중매체들은 영화 속에서 가상현실 ‘매트릭스’를 설계하고 그 속에 인간들을 가둬버린 ‘아키텍트’처럼 인간들을 허구(fiction)와 가상(imaginary)의 세계 속에 가두고 사이퍼처럼 그것을 욕망하게 한다. 의미와 본질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았다. ‘껍데기’ 이미지만을 욕망하고 소비할 뿐이다.

영화에서 워쇼스키 남매 감독이 보여주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은 책 껍데기와 제목만 있을 뿐 내용은 없다. 그 책 속은 USB 은닉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비어 있다. 보드리야르의 책이지만 보드리야르의 책이 아니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 꿈을 잃어버린 세대에게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은 고통일 뿐이다. 우리도 사이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이퍼처럼 현실의 멀건 죽사발을 외면하고 가상의 그것이라도 육즙이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욕망한다. 현실을 팔아넘기고 포기하고라도 허구와 가상의 세계를 욕망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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