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저자에게 묻다(17)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의 저자 하수정 작가

청년은 일할 곳이 없다. 중년은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장년은 일하고 싶어도 받아주질 않는다. 대한민국의 불편한 민낯이다. 길을 잃은 사람들은 북유럽을 동경한다. 경쟁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고,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유럽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바꿔야 할까.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의 저자 하수정(38) 작가에게 그 해답을 물어봤다. 

▲ 하수정 작가는 “북유럽 사람들은 생산적으로 경쟁한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 북유럽 스타일의 경쟁은 무엇인가요?
“생산적인 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생산적이라? 좀 추상적입니다. 
“범위를 좁혀보죠. 아마도 나와의 경쟁일 것입니다.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만들겠다’ ‘이 제품을 통해 불편을 최소한으로 줄이겠다’ 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와 경쟁하는 거죠. 유럽에서 그 어떤 것과 비교하기 힘든 제품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해요.” 

✚ 북유럽 특유의 ‘편안함’이 읽힙니다. 편안하니까 ‘자신과 경쟁한다’는 말이 나오는 걸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뭔지 기억 나시나요?” 

✚ 음, 떠오르지 않네요. 
“‘경쟁하지 않는 비즈니스를 만난다’예요. 북유럽 사람들을 만나보면 삶을 관조하는 이들이 많아요. 당연히 사유의 깊이가 대단하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 내가 만족할 때까지 무언가를 한다는 심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 무한경쟁에 내몰린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어찌 됐든 우리도 무언가 바꿔야 할 때입니다. 
“상대방을 경쟁자로 보는 것과 동료로 보는 것은 뭐가 다를까요? 경쟁자로 보면 결과가 좋아질까요? 더 쉽게 말해보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바꿀 순 없을까요? 내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은 남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기쁨을 찾아가는 길에서 동력을 찾아야 합니다. 결국, 나 자신과 흥미롭게 싸우자는 거죠.”

✚ 상대방과의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한국 사회엔 배려가 없습니다. 갑을 논쟁도 같은 맥락에서 끊이지 않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단단한지 우리는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펑범한 다수가 기득권에 경종을 울릴 수도 있죠. 갑을 논쟁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을들이 정당성을 갖고 힘을 모아 갑과 맞서면 안 될 게 없다고 봐요.”

✚ 그 논리를 소비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겠네요.
“기업이 제시하는 트렌드를 그대로 좇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소비자 스스로 경제의 향방을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도 ‘연대의 힘’을 발휘할 때가 됐습니다. 정당성을 향해 끈기 있게 움직인다면 경제 주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몰라요.” 

✚ 지나친 낙관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닙니다, 이번 ‘촛불집회’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개인의 가치관이나 행동은 사회를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정치주권을 회복한 데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소비자로서의 경제주권을 행사할 시간이 됐다고 봅니다.” 

삶을 관조하면 여유 생겨

✚ 화제를 돌려 양성 평등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양성평등이 정착돼 있는 북유럽에선 여성의 경력단절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스웨덴은 1950년 무렵 여성의 경력단절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중 확실한 효과를 거둔 정책은 유급 육아휴직의 기간을 늘리고, 아빠와 엄마가 육아휴직을 함께 쓰도록 장려한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제도는 있습니다. 제도보다 중요한 건 ‘실천의지’라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죠.” 

✚ 현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죠. 
“주변에 육아휴직 갔다가 복귀하는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육아휴직을 한 남성을 본 적은 있으신가요? 이게 한국의 슬픈 민낯입니다.”

✚ 경력단절 문제를 물어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남녀평등 지표는 세계에서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북유럽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가치관과 사회적 합의가 발현돼야 제도가 단단해집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에도 남성, 여성 모두를 위한 육아휴직제도나 고용평등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제도들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죠. 가치관은 물론 사회적 합의도 완전하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 우리나라에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처럼 존경받는 재벌이 없는 이유도 같다고 봅니다. [※참고: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발렌베리 가문을 알아야 한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발렌베리 가문은 재벌이지만 부富를 철저하게 사회에 환원해 존경을 받는다. 이를 위해 만든 공익법인이 바로 발렌베리 재단이다.] 
“발렌베리 재단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여러 기초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자본금 규모는 10조원이 넘는데, 재단의 목표는 ‘스웨덴을 이롭게 하는 연구에 투자한다’ 입니다. 우리나라엔 왜 이런 재벌이 없냐구요? 우리는 여기서 ‘의지의 문제’라는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발렌베리 사례가 한국에 적용되려면 재벌가문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 한국에도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는 제도가 많다. 문제는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사진=뉴시스]
✚ 결국 북유럽은 이상이 아니라 실천의지군요. 
“적절한 의견입니다.” 

스스로 기쁨 찾는 게 삶의 동력

✚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유럽을 통해 무엇을 얻었으면 하시나요?
“백야의 여름에 북유럽을 방문하면 숲에서 블루베리를 따는 등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일찍 문을 닫는 가게와 과잉 친절이 없는 식당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아마도 한국의 팍팍함과 편리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북유럽은 천국, 한국은 지옥이 아니라는 겁니다.”

✚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네요. 한국을 바꾸기 위해선 실천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게 결론으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북유럽을 벤치마킹하는 건 좋지만 역사도, 환경도 다릅니다. 북유럽에서 얻은 답이 한국에서 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든 ‘실천하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북유럽이 주는 교훈입니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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