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닷컴의 생활법률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법적 신분은 늘 논란거리다. 그들을 사업자로 보느냐 근로자(노동자)로 보느냐에 따라 법적 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은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근로자성(노동자성)을 인정해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런 추세는 상식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

▲ 특수고용직 종사자라고 해도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4대보험 적용은 물론 퇴직금까지 받을 수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A기업이 생산하는 전자제품의 AS서비스를 담당해 온 권지용(가명)씨. 권씨는 4년 전까지만 해도 A기업의 정직원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2013년 AS서비스 업무를 외주 도급계약 형태로 전환하는 바람에 개인사업자가 됐다. 찜찜했지만 “동의하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개인사업자의 길을 택했다. 사실 업무량에 비례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솔깃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은 더 많았고, 쉴 시간은 줄었는데, 받는 돈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권씨는 결국 지난해 2월 일을 관뒀다.

그런데 권씨는 뭔가 찜찜했다. 퇴직금 때문이었다. 물론 2013년 회사가 AS서비스 업무를 외주형태로 바꿀 당시, 회사는 권씨에게 퇴직금을 정산해줬다. 문제는 그 이후 일했던 약 3년간의 퇴직금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거였다. 회사 측은 “권씨가 개인사업자로 계약했기 때문에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결국 퇴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법원은 권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AS서비스 기사의 업무 수행 건수는 회사의 배정에 의해 정해졌다. 기사들이 독자적으로 거래처나 고객을 개척할 수 없었다. 또한 회사는 사실상 기사들을 구속했고, 업무를 지휘ㆍ감독했다. 따라서 권씨는 종속적 관계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하고, 회사는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특히 법원은 “기사들이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사업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개별 납부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다만 이는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임의로 정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부 업무 형태만으로 기사들의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현행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퇴직금을 받으려면 당사자가 근로기준법(노동법)의 ‘근로자’여야 한다는 얘기다. 법원이 권씨의 ‘근로자성’을 먼저 들여다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판례는 매우 중요하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법적 권리와 맞닿아 있어서다. 현재 특수고용직 종사자 가운데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근로기준법이나 4대 보험 등을 적용받지 못하는 이들이 숱하다. 권씨도 법적으로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다. 법원이 권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는 건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법적 지위를 재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대법원은 2006년 “근로계약이 아닌 용역계약을 체결한 경우, 일반 직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적용받지 않는 경우, 부가가치세법상 사업자등록을 한 경우,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 당한 경우, 직장의료보험이 아닌 지역의료보험에 가입된 경우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시한 바 있다. 법원이 이 판례를 귀하게 여겨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법적 권리를 개선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전승대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ㆍ변리사 cosmos-law@naver.com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