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우정치에 빠진 대권주자들

▲ GDP 성장률을 제시하는 대권주자가 단 한명도 없다. 한국 정치가 걱정이다.[사진=뉴시스]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권력욕에 매몰된 정치판을 보면 ‘칼레파 타 칼라’라는 그리스 속담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일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이 말은 이문열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은 그리스 시대 가상의 도시국가인 아테르타에서 벌어진 일을 소개하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지 우화 형식으로 그려냈다.

어느 봄날 스피클레스라는 남자가 “새로운 지도자가 다리를 저는 것 같다”고 말했다가 주변 사람에게 불온한 언동이라고 경고를 받는다. 불면의 밤을 보낸 그는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언덕에서 이렇게 외친다. “아테르타 시민이여, 우리는 압제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민들은 신전에 메아리쳐 온 이 목소리를 신탁神託으로 오인하고 도심 광장인 아고라(agora)에 모여든다. 모인 군중은 시위의 양상을 띠게 됐고, 지도자를 몰아내지만 결국 권력에 눈 먼 야심가들로 인해 나라가 멸망한다. 나라가 망한 뒤 소피클레스는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칼레파 타 칼라.”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위기 아닌 적이 별로 없었다. 미국 금리인상이나 고조되는 북핵 위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요구 등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급증하는 가계부채나 높은 실업률, 대선 이후 쏟아져 나올 경제민주화 법안 등은 대표적인 국내 악재다. 잘 알려진 익숙한 위기는 이미 위기가 아니다. 외국인들이 최근 한국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고 수출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정녕 위기가 맞나 싶다.

한국이 처한 진짜 위기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에 빠져 시장경제라는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까.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85개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다. 지정학적으로 반경 2000㎞ 내에 15억명의 시장에 둘러싸여 있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튼튼한 제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한강의 기적’은 시장경제라는 고속도로를 통해 질주할 수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도대체 이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끌고 갈 생각인지 걱정이 앞선다.

FT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유수의 해외언론들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은 중도좌파에서 나올 것이며 재벌시스템을 손보려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재벌을 때리면 속은 통쾌할지 몰라도 자칫하면 거기서 밥이 나오기는커녕 밥통이 깨진다. ‘반기업인 정서’와 ‘반기업 정서’를 구별해야 한다. 물론 이 땅에는 일부 악덕 재벌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법질서를 엄격히 집행하고 상속세와 증여세를 철저히 과세하면 머지않아 재벌은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속세만 해도 50%가 넘는데 무슨 걱정인가 말이다. 정경유착으로 재벌의 온갖 탈법과 불법을 적당히 눈감아 줘서 그렇지 정부가 눈 부릅뜨고 법질서를 제대로 집행만 한다면 재벌 문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얼마 전 경총회장이 “한국은 안 되는 게 없는 나라였는데 지금은 되는 게 없다”고 탄식했다. 반대로 일본은 ‘안 되는 게 없는 나라’가 됐다. 한국 국회가 그토록 발목을 잡다가 겨우 누더기로 통과시킨 ‘원샷법(기업활력제고법)’이 일본에선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규제 천국으로 불렸던 일본이 지금은 바이오ㆍ인공지능ㆍ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선두를 달리는 나라가 됐다. 이 극적 역전의 원인은 결국 ‘정치’다. 우리 대권주자 중에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를 만들 후보가 있는가.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래리 서머스는 “성장을 전제하지 않은 일자리 창출은 모두 사기”라고 일갈했다. 한국의 청년들이 취업을 못해 아우성인 이유는 구글ㆍ아마존ㆍ바이두ㆍ알리바바 등 설립 20년이 안된 신생기업 일자리를 많이 만들지 않아서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이나 공공노조 앞에서 성과주의를 폐지하겠다는 포퓰리즘으로는 희망이 없다. 대권주자들 가운데 아무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조차 제시하지 않는다. 한국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유력 대권주자의 시선이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해 있어서다.

2017년 5월 9일에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한계를 딛고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시장경제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욕을 먹더라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역량을 모으는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 ‘칼레파 타 칼라’라는 숨넘어가는 탄식은 우화 속의 얘기로 족하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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