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강아지로 스마트폰 중독을 해결하는 건 무리였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나이 오십이 넘어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진 필자는 휴대전화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사소한 업무처리부터 모르는 영어단어 확인, 자료 검색, 음악 듣기 등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인터넷과 연결된 스마트폰은 개인과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나의 집약체다. 필자가 전철에서 젊은 학생의 편을 들어, 어떤 노인과 다툰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학생들을 심하게 나무라던 노인의 불만을 들어보니 “젊은 놈들이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는 거였다. 학생들은 왜 자신들이 대중 앞에서 망신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한 표정이다. 이때 필자가 개입했다. “어르신도 집에 가면 신문과 TV를 보고, 영화나 독서를 즐기며 지인들과 연락을 할 것 아닙니까? 전화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있고, 젊은 친구들은 단지 전철에 앉아 그것을 할 뿐인데 그것이 비난받을 이유가 됩니까?” 

하지만 격론의 상대와 포옹하는 논쟁은 드문 법이다. 노인의 반격을 예상한 필자는 전철문이 열리자 도망치듯 내렸고 예기치 못한 적군의 등ㆍ퇴장에 할아버지 역시 ‘저놈은 뭐여’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심한 것은 한때 남의 아들을 편든 자가 지금은 아들의 휴대전화를 맹비난하는 처지가 됐다는 거다.

잘못된 용도를 탓하는 것인데 노동자 반달치 월급에 육박하는 기기로 게임이나 SNS에 몰두하며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정말 딱한 일이다. 책을 통해 바른 지식과 교양,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시기가 휴대전화에 함몰돼 바람같이 지나갈 뿐이다. 어쨌거나 아들 휴대전화 중독을 어찌해 보고자 고육지책으로 들인 강아지는 동물병원에서 귀털을 강제로 뽑힌 후 시름시름 앓아누웠다.

2개월에 불과한 작은 몰티즈는 설탕물로 혈당을 유지하며 실낱같은 생명을 이어간다. 점점 위중해져 누운 채 대소변을 지리니 아내는 강아지를 씻기고 품에 안아 울고 다니며 보살핀다. 운동생리학 전공의 필자는 예감이 좋질 않았다. 꿀벌도 아닌 늑대의 후손에게 설탕물을 주라는 애견센터의 지시 역시 미봉책으로 보였다. 야윈 채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보며 우리 네 가족은 수시로 운다.

살려 보려는 마음에 강아지를 애견 센터로 돌려보내고, 텅 빈 우리를 보며 우리 네 식구는 소리죽여 운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필자는 휴대전화를 보며 찻길을 건너는 아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최근의 사태로 약이 바짝 오른 필자의 눈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불이 튄다.

마침 옆에 있던 벽돌로 사정없이 휴대전화를 내리쳤고 아들과 아내는 묵묵히 이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필자의 손바닥에서 흐르는 피가 박살 난 휴대전화 위로 떨어진다. 다음날 필자는 강아지가 죽었다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깡지도, 휴대전화도 그렇게 떠났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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