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부지수가 낮은 이유

▲ 미국의 부호들이 재산의 사회 환원에 나설 때 한국의 부자는 부의 대물림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세계 경제규모 11위, 세계 기부지수 75위. 우리나라 기부 문화의 초라한 민낯이다. 특히 기부지수는 2015년 64위에서 11계단 하락했다. 부자가 많은 미국은 세계 기부지수 순위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은 2011년에는 뜻밖에도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부자들, 무엇이 문제일까.

영국 자선지원재단(CAFㆍCharities Aid Foundation)은 2010년부터 매년 세계 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를 발표한다. 세계 기부지수는 낮선 사람을 도운 경험, 기부를 해본 경험, 자원봉사 시간 등을 수치화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빈국에 속하는 미얀마가 100점 만점에 70점을 받아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특수한 경우로 소승 불교를 따르는 미얀마에서 사찰기부와 시주문화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종교적인 이유로 기부를 많이 한다는 얘기다. 미얀마를 제외하면 기부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 부자의 기부 문화는 예전부터 활발했다. 세계적으로 기부활동을 가장 활발히 한 인물로 기억되는 앤드루 카네기ㆍ존 록펠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철강왕’으로 유명한 카네기는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가족에게는 기부금액의 3%만 남겼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한 그의 좌우명에서도 기부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의 ‘석유왕’으로 불린 존 록펠러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때 미국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며 독점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1892년 당시 돈 6000만 달러(현재 약 686억1000만원)를 출연해 시카고대학을 설립했다. 이밖에도 록펠러의학연구소, 록펠러재단 등도 그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병원ㆍ학교ㆍ교회를 지역사회에 기증했다.

미국 부자의 기부 활동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2013년 9억9220만 달러(약 1조1425억원)를 기부하면서 세계 기부 순위 1위에 올랐다. 2015년 12월에는 전 재산의 99%를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명인 빌 게이츠도 재산의 95% 이상을 기부할 예정이고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도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위런 버핏은 개인 재산의 기부를 넘어 기부 문화를 주도하는 인물이다. 그는 전세계 부자들을 대상으로 죽기 전까지 재산의 반 이상을 기부하자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운동을 이끌고 있다. 실제로 전세계 14개국 130명 이상의 부자가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서약했다.

미국 부자의 기부활동은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경제 회복을 위해 상속세 폐지를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의 ‘책임을 다하는 부(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에서 이를 반대했다. 상속세 폐지가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막을 뿐만 아니라 부의 재분배 기능을 약화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놀라운 점은 이 단체의 구성원 700여명이 부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부자들이 이토록 기부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의 부자들은 엄청난 부의 원천이 개인의 역량이 아닌 사회 시스템의 혜택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일종의 ‘부채의식’이다. 미국 부자들이 병원ㆍ학교ㆍ도서관 등을 건립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것도 사회에서 번 돈을 환원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둘째, 막대한 유산이 후손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인 ‘성취동기’가 결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주요 기업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인(CEO)을 선임하는 대리인제도가 발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부자의 기부활동은 사회를 통합하고 양극화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부자로 꼽히는 재벌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한국의 세계 기부지수는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세계 기부지수 순위는 75위, 2015년 64위 보다 11계단이나 떨어졌다. 세계 경제규모 11위라는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한국은 기부에 매우 인색한 나라다. 물론 우리나라의 재벌도 기부를 한다. 하지만 개인의 기부가 주를 이루는 외국과 달리 법인을 통한 기부가 많다. 재벌의 기부 활동이 저조하다고 비판 받는 이유다. 법인과 개인의 재산은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인의 기부를 부자의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 지난해 한국의 세계 기부지수 순위는 2015년보다 11계단이나 하락했다.[사진=뉴시스]
실제로 법인의 기부는 사회적 관심이 높은 이벤트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간접적인 홍보용으로 이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이 놀랍지 않은 건 한국 부자의 관심이 재산의 사회 환원보다 상속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가 대물림될수록 상속 의지는 더욱 강화된다. 후손의 자산 형성 기여도가 낮아서다. 한 기업을 ‘집안의 자산’으로 생각해 상속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를 예로 들어보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상속자로 10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가 납부한 증여세는 16억원에 불과하다. 2009년 차명계좌ㆍ불법승계 등 혐의로 유죄를 받고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이건희 회장의 약속도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상속에 열 올리는 한국 부자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업도 변화해야 한다. 새로운 대기업이 탄생하고 새로운 부자가 나올 수 있어야 경제도 발전한다. 부의 대물림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눠지는 신계급론을 강화할 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의 리더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자들이 먼저 그들의 부를 쌓게 해준 사회에 감사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 부자라는 이유로 사회의 희생을 강요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려고만 하면 우리나라는 더이상 발전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존경받는 기업, 존경받는 부자가 필요하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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