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채널 수수료율 못 잡는 이유

▲ 높은 수수요율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관련 개정안은 대부분 임기만료 폐기됐다.[사진=뉴시스]
백화점과 TV홈쇼핑의 실질수수료율이 공개됐다. 계약서에 적힌 것보다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다지만 수수료를 내는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수년간 제기돼 오고 있는 ‘높은 판매수수료’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걸까. 무엇이 문제일까. 답은 갑을 관계에 있다.

“잦은 세일로 판매가격은 할인해 주지만 납품업체의 수수료는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윤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A백화점의 1차 밴더 잡화브랜드 대표의 하소연이다. 10년 넘게 국내 의류브랜드를 납품하고 있는 한 중소업체 대표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40%에 가까운 수수료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대기업이나 해외브랜드에 10%대 수수료가 적용되는 것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백화점과 TV홈쇼핑의 판매수수료율이 공개됐다. 그동안에는 계약서상에 명시된 명목수수료율만 공개됐지만 이번엔 납품업체들의 ‘실질수수료율’도 사상 처음으로 베일을 벗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0일 ‘2016년 백화점ㆍTV홈쇼핑 분야 판매수수료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백화점 납품업체의 실질수수료율은 평균 22%로 명목수수료율 27.4%보다 5.4%포인트 낮았다. TV홈쇼핑 납품업체의 실질수수료율(27.8%)도 명목수수료율(33.2%)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판매수수료율도 해마다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백화점의 평균판매 수수료율은 5년 전인 2011년에 비해 1.8%포인트(29.2%→27.4%), TV홈쇼핑은 0.9%포인트(34.1%→33.2%) 낮아졌다.

그렇다고 대형유통채널의 수수료율이 정상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납품업체에 적용하는 백화점과 TV홈쇼핑의 수수료율은 여전히 20~30%대로 높다. 업체별 수수료율도 천차만별이다.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백화점의 경우, 롯데백화점이 23.8%로 수수료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AK는 18.5%로 가장 낮았다. TV홈쇼핑에서도 롯데가 33.3%로 가장 높았고, 중소기업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홈앤쇼핑은 18.3%로 유일하게 10%대 수수료율을 기록했다.

상품군별로도 제각각이었다. 롯데백화점을 예를 들어보자. 모 여성캐주얼 업체는 롯데백화점에 납품하면서 49%의 수수료를 낸다. 반면 귀금속을 납품하는 모 업체에는 0.6%의 낮은 수수료율이 적용된다. 같은 유통채널에 납품을 했지만 두 업체간 수수료율 차이는 무려 48.4%포인트에 달했다. TV홈쇼핑도 명확한 기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대홈쇼핑에 건강식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68.5%로 가장 높은 수수료율을 기록한 반면 레저용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1.5%의 수수료율로 TV홈쇼핑 채널 중 최저수수료율을 기록했다. 수수료율은 국가별, 납품업체 규모별로도 달랐다. 국내브랜드(23%)의 수수료율이 해외브랜드(27.8%)보다 높았고, 중소기업(23.3%)은 대기업(22.7%)보다 높은 수수료율을 부담하고 있었다.

수수료율 결정하는 건 ‘협상력’

사실 대형유통채널의 높은 수수료가 문제가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높은 수수료는 늘 문제였다. 하지만 관련 특별법이 없어 공정거래법의 ‘대규모소매점업 고시’를 적용해왔다. 그러다 한계를 느껴 2011년 관련 법률(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 사이 불공정거래 업체들을 적발해 높은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고, 수수료율 실태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됐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알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대체 왜일까. 공정위는 “국내브랜드나 중소기업의 수수료율이 높은 것은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기업이나 국내브랜드가 수수료에서도 불이익을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갑을 구조가 문제라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홈쇼핑사가 납품업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방식은 정률수수료, 정액수수료, 혼합수수료 등 세가지다. 홈쇼핑사들은 방송시간대별로 동종 또는 유사한 상품의 과거 판매실적, 판매수수료 수익, 매출 순이익, 해당연도 성장목표 등을 고려해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매목표금액 등을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판매수수료를 정한다. 명확한 수치로 정한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따라 수수료율을 정하다보니 어떻게 협상을 하느냐에 따라 수수료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 잦은 세일로 판매 가격은 할인해주지만 납품업체의 수수료는 그만큼 할인해주지 않는다.[사진=뉴시스]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백화점에 납품하는 20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백화점과 합의해 판매수수료를 결정한다’는 응답이 40.2%였다. 나머지는 ‘백화점에 제시하는 수준을 수용(34.6%)’하거나 전년도 수수료율과 매출 수준에 따라 결정한다고 답했다. 또한 업체들은 수수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협상력이 낮다(47.5%)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홈쇼핑과 백화점 모두 협상력이 수수료율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다.

수수료 키는 여전히 유통사 손에

수수료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수수료율을 제재할 효율적인 수단이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대규모유통업법이 있긴 하지만 수수료율에 대한 항목은 따로 없다”면서 “유통업자와 납품업체에 맡길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자발적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는 것이라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납품업체의 실제 수수료 부담을 나타내는 실질수수료율이 상세하게 공개된 만큼 납품업체의 수수료 부담도 줄어들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납품업체가 특정 상품군 협상에 임할 때 미리 평균값을 알면 더욱 합리적인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통사에 자릿세를 낼 수밖에 없는 태생적 약점을 갖고 있는 중소 납품업체가 과연 동등하게 협상의 키를 나눠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법안을 만들기 위한 효율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