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묘한 오버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는 문득 경복궁을 창건한 삼봉 정도전이 떠올랐다. 아마도 청와대가 조선왕조 500년을 다스려온 왕의 궁궐(경복궁) 바로 뒤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 1000만 촛불의 의미를 정치인들이 먼저 알아야 한다.[사진=뉴시스]

고려의 신하였던 정도전은 유배 생활을 하던 중 들녘에서 만난 한 농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요새 관리들은 국가의 안위, 민생의 안락과 근심, 시정의 득실에 뜻을 두지 않고 있은 것 같더이다.” 고려의 폭정暴政에 실망하고 있던 정도전은 간담이 서늘했다. 민초들의 분노가 생각보다 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정치의 콘셉트를 ‘위민爲民’으로 잡았고, 새 왕조를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비록 이방원에게 주살돼 민본주의를 펼치진 못했지만 정도전의 정치철학은 현대사회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특히 그가 명명한 경복궁景福宮과 근정전勤政殿, 광화문光化門의 현판은 청와대의 주인에게 무언가를 일갈하고 있는 듯하다. 먼저 근정勤政이란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이다. 부지런히 해야 할 바를 알고, 그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엉뚱한 일에 부지런하거나 편히 쉬기만을 탐하면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생겨 무릇 정치를 그르친다는 조언이다. 정도전은 왕의 부지런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 아침에는 신하들과 정사를 토론하고, 낮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공부하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왕이 근정전에서 열심히 일하면 큰 복이 내리고(景福), 빛이 사방을 덮어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光化)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은 고사하고 음성조차 몇 달 만에 듣는다는 장관, 서면보고만으로 국정을 챙긴다는 문고리 비서진, 대통령과 소통을 못해 엇박자를 내는 집권여당, 혼자만의 세상을 즐긴다는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 자신…. 이 모두가 바로 삼봉 정도전이 명명하고 주창했던 근정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세월호 7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기에 대통령이 적절한 지휘체계를 가동하지 않고 소재가 불분명했던 건 ‘부지런히 임한다’는 위정자의 철칙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이 철칙만 준수했다면 10분 단위로 보고를 받고 즉각 팽목항 현장으로 갔을 것이다. 어린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절체절명의 아비규환 현장을 목격하면서 즉각 탈출 지시를 하달했을 것이다.

정도전이 엉뚱한 일에 부지런하지 말라고 계도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숨어 있을 것이다. “엉뚱한 일에 부지런하다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욕심과 쾌락을 좇는다는 것이다. 그 중독성과 폐해는 워낙 심대해 정치를 잘못할 위험성이 크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은 어쩌면 600여년 전 삼봉 정도전을 일깨운 한 농부보다도 못한 사람들일지 모른다. 국가의 안위, 민생의 안락과 근심, 시정의 득실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익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봉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에게 건넨 예언이 기록돼 있다. “숭례문이 전소되면 국가의 운이 다한 것입니다.” 그런 숭례문이 2008년 2월 화재로 불탔다. 그로부터 8년 후인 지금 1000만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필자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국가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가 됐다. 다음 정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래, 대한민국은 다시 출발점에 섰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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