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2016년 결산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게이트가 터졌는데 당사자는 혐의를 부인한다. 탄핵소추를 끌어낸 촛불 민심은 국가 대개조의 동력이 될 것인가? 이필재의 人sight 리뷰를 통해 국가 대개조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 유진룡(왼쪽) 전 장관은 “김기춘의 정부 복귀로 우리나라가 3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개탄했다. 박성민 대표는 “지금의 미명이 청산하지 못한 어둠의 끝자락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아마 마법의 거울이 있다면 매일 들여다보면서 ‘거울아 거울아 지상에서 누가 가장 대한민국을 위하니?’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지난여름 「커맹아웃」을 출간한 소통 전문가 박영근(62) ㈜아담재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불통’ 대통령 박근혜의 지독한 독선을 이렇게 꼬집었다. 박 대표는 “제대로 소통하려면 먼저 인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독선에서 벗어나려면 구중심처에서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역겨운 사람부터 만나길 권했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역설했다. 대통령은 그 후로도 불통이었고,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놀아난 끝에 탄핵소추를 당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필재의 人sight’를 1년여 만에 재개하면서 인터뷰이의 선정 기준을 손질했다. 종사 분야를 확장했고, 인물 밸류보다는 인터뷰이의 콘텐트 밸류를 중시하기로 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로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참여한 유진룡(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몇몇 정치 전문가를 만났다.

헌재는 과연 박근혜 탄핵을 용인할 것인가? 박성민(52)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결국은 탄핵될 것”으로 전망했다. 헌재가 촛불 민심에 담긴 주권자의 거센 요구를 거스를 수는 없을 거라는 게 근거다. 문제는 대통령의 도중하차로 과연 적폐의 진원인 ‘앙시앙 레짐’을 청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지금의 미명이 새로운 시대의 전야일 수도 있지만 청산하지 못한 어둠의 시대의 끝자락일 수도 있다”고 말해 판단을 유보했다. 

“앙시앙 레짐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카르텔 집단이죠.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집단, 고위 관료들, 재벌, 검찰ㆍ법원ㆍ로펌을 포괄하는 법조계, 유력 언론기업 등은 이익동맹을 맺고 국가의 공적 기능을 무력화했습니다. 이 카르텔은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사유화해 특정인과 특정 기업의 이익을 챙겨줬습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했죠. 삼성을 예로 들면 이병철ㆍ이건희 시대보다 이재용 시대에 더 질 안 좋은 부당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차(20대 총선)ㆍ2차(탄핵) 게임 체인저가 나타나면서 이 카르텔에 균열이 시작됐습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더스쿠프(The SCOOP)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재임 중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어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조치를 요구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정권의 파워엘리트들이 블랙리스트라는 공적 제도를 활용해 사적인 차별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는 “김기춘의 정부 복귀로 이 나라가 3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개탄했다.
한국 경제의 병폐로는 불평등의 심화, 양질의 일자리 부족, 성장세 둔화 등이 꼽힌다. 서동윤(38) 고용노동부 천안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려면 성장에 방점을 찍되 성장 전략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좋은 제품을 내놓아도 대기업 제품에 비해 신뢰도가 낮고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내수시장에 성장의 토대를 마련해 주고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해야 대기업에 치이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김동호(29) 한국신용데이터 대표는 “혁신 없이 지대를 추구하는 풍조가 공정 경쟁을 해치고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파이를 작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박찬구(53) 티씨케이텍스타일 회장은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제조업에 기반을 둔 사업 서비스(business service sector based on manufaturing)’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메이커라면 유지보수 서비스를 같이 파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이팟ㆍ아이폰 팔면서 음악을 같이 파는 것도 이 모델이에요. 그런데 제조업체가 이렇게 서비스를 같이 팔려면 제품 자체가 업계 최고 수준이라야 합니다. 앞으로는 1등이 못 되면 물건도 못 팔고 서비스도 끼워팔기 어려워요. 최고의 제품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팔아야 고객이 제품 및 서비스에 묶이게 됩니다.”

혁신의 대세는 O2O(Online to Offline)이다. 온라인(online)과 오프라인(offline)이 결합하는 전 산업, 전 방위적 추세다. 친환경 옷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오르그닷 김방호(38) 대표는 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designersnmakers.com)라는 디자이너ㆍ생산자 간 O2O 플랫폼을 만들었다. 의류 디자이너와 생산자인 메이커들이 직거래하는 앱스토어. 오르그닷은 이 온라인 장터를 통해 생산되는 옷에 대해 장차 품질 보증을 서려 한다. 인텔의 ‘인텔 인사이드’ 제품처럼 ‘메이드 바이 오르그닷’은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 주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등 굴지의 대기업에서 마케팅 담당 임원을 지낸 최명화(51) 최명화&파트너스 대표는 “O2O 시대엔 어느 기업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이라는 대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며 “기업들이 비즈니스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이 저마다 1인 미디어인 만큼 기업이 정직하고 투명할뿐더러 겸허해야 합니다. 부족한 점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자사를 희화화하는 여유가 필요해요. 무엇보다 위기에 처했을 때 정직하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협력과 상생은 과연 가능한가? 토종 저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커피에반하다는 창업 5년여 만에 매장 수 420여개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고객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하는 리워드 서비스를 제공 중이고 내년 초엔 업계 최초로 무료 창업 지원제도도 도입한다. 임은성(41) 대표는 가맹점이 원두, 1회 용품 등의 재료비를 선결제하도록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했다. O2O다. 이 인프라 덕에 미수금 발생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선납 예치금 성격의 보증금을 가맹점으로부터 받지 않는다. 가맹비, 로열티, 교육비도 받지 않는다. 이 회사가 처음 시도한 후 업계에 퍼진 이른바 4무無 정책이다.

한국인 중 가장 성공한 해외 외식 기업인인 김승호(52) 스노우폭스 회장은 미국에 스노우폭스라는 그랩&고(GRABㆍNㆍGO) 개념의 레스토랑을 세계 최초로 열었다. 김밥ㆍ스시를 파는데 편의점과 식당의 중간 모델. 전 세계에 1200여개 지점을 둔 세계 최대의 도시락 회사다. 스노우폭스 매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김 회장은 “경쟁자들이 우리 비즈니스를 모방해야 우리가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결과 산업의 규모가 커지게 마련인데, 이는 고객으로서도 좋은 일이죠. 협력과 공생,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기업이 이익을 내는 막강한 도구예요.”

대기업의 공세 속에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살아남는 길은 무엇일까? 이랑주(44) 스타일공유 대표는 전통시장 지킴이이자 소상공인의 성공을 위해 뛰는 맞춤형 VMD다. 그는 시장 상인도 “고객이 뭘 원하는지 제대로 알고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철학이 있어야 돼요. 시장은 또 마트처럼 상거래가 이뤄지는 곳이자 마트와 달리 문화가 서려 있는 삶의 현장이에요. 마트가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라면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죠. 시장이 이 문화성을 상실하면 마트에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국민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당시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확연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가 대개조’는 공염불이 됐고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이 블랙 스완에 대한 대처에 적폐의 청산이 달렸는지도 모른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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