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박용준 삼진어묵 부사장

박용준(33) 삼진어묵 부사장은 수산물 가공품인 어묵을 지구촌에 알리는 것이 자신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커피와 빵처럼 세계인이 먹는 식품으로 만드는 것이 삼진어묵의 100년 대계라고 밝혔다. 63년 역사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회사 오너 3세인 그는 미국 공인회계사의 길을 접고 가업을 승계해 업계 리딩 컴퍼니로 키웠다.

▲ 박용준 삼진어묵 부사장은 “매출액이나 시장점유율로 1등을 하기보다 어묵 식문화를 선도해 어묵업계 리딩 컴퍼니, 어묵업계의 애플이나 나이키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삼진어묵 제공]
“인기 상품도 유행이 지나면 시들해지죠. 그러나 사람들이 어묵 크로켓(고로케)을 어묵 베이커리에서 집어들어 디저트로 먹는 문화를 만들어 내면 삼진어묵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묵 베이커리를 창안한 박용준 삼진어묵 부사장은 63년 된 3대 가업을 100년 기업으로 만드는 길은 짜장면처럼 어묵을 일상적으로 먹는 소비 문화를 뿌리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묵은 수산물 가공품이지만 빵처럼, 아니 커피처럼 소비하는 문화를 만들어 세계에 알리려 합니다. 세계적으로 어묵을 먹지 않는 나라가 많아요.” 어묵 베이커리는 어묵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반찬용이나 꼬치어묵으로 시장과 거리에서 팔리던 먹거리가 빵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삼진어묵 베이커리는 서울·대전 등 전국 20곳에 있다. 대전의 성심당 빵집을 연상시키는 부산역점 매출액이 가장 높다. 어묵 베이커리를 선보이는 과정에서 그는 성심당, 파리바케뜨, 설빙 등을 벤치마킹했다. 이들 잘되는 집은 공통점이 있었다. 가성비가 높고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식문화를 이끌어갔다. 소비자를 납득시키려 들지 않고 소비자와 소통해 만들어낸 식문화는 소비자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시장에서 ‘어묵 1번가’라는 브랜드로 시행착오를 겪은 그는 영도 본매장에서 베이커리에 도전했다. 어묵 제품 트레이마다 피오피에 가격과 상품 정보를 적어 넣고 카드 결제를 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포스를 도입해 구입한 제품을 고객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또 매장마다 유리벽 안에서 위생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바로 먹어도 되는 거냐”고 묻는 손님들이 많은 것에 착안해 누가 봐도 디저트처럼 보이도록 크로켓 제품을 종이로 쌌다. 크로켓 등 제품 고급화, 베이커리형 매장 판매에 힘입어 매출이 폭발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530억원에 달했다. 3년 새 1250% 신장됐다.

그는 사무실에 컴퓨터도 없고 직원이 달랑 한 명이던 4년여 전 아버지의 권유로 경영에 참여했다. 그의 직할부대인 기획관리실 직원 20명을 포함해 사무실 직원은 지금 60명에 이른다. 평균 연령은 29세. “소비자들이 과연 그런 변화를 바라겠느냐”고 반대했던 그의 아버지 박종수 사장, 손사래를 치던 공장 사람들도 이런 변화를 지켜보며 그의 우군이 됐다.

“할아버지(고 박재덕 창업주)가 한국전쟁 당시 먹고살기 위해 피난민들을 상대로 창업을 하셨습니다. 어묵은 당시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죠. 아버지가 공장을 기계화해 대량 생산을 하면서 회사가 성장했지만 판로 개척 부진으로 침체기를 맞았었습니다. 기계가 뽑아낼 수 있는 상품만 만들어 소비자에게 먹으라고 강요하던 시절이었죠.”

미국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막 실무수습을 시작한 그에게 아버지가 SOS를 쳤다. “미국에서 하던 일은 제가 없어도 누군가 대신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 회사는 저를 간절히 필요로 했어요.”

마케팅을 공부한 일도 없고 회사 생활도 처음인 그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6개월간 어묵을 다섯개씩 집어 포장하는 일만 했다. 마음은 편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묵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영업을 하러 나섰다. 영업 담당 상무는 그렇게 1년간 꾸준히 방문하면 거래를 틀 수 있다고 귀띔했다. 아버지가 공장을 이전하며 라인을 증설해 매출을 30배로 올려야 했던 그로서는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온라인 몰에서 대박이 났다. 무지개 세트 등 다양한 패키지로 소량 포장해 택배를 한 것이 주효했다. 온라인 몰 회원은 지금 10만명을 바라본다. 오프라인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려 이번엔 어묵 베이커리에 진출했다.

부산엔 어묵 회사가 180개에 이른다. 삼진어묵은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공장이다. 몇몇 어묵 회사는 이 공장에서 일하다 독립한 사람들이 차린 회사다. 부산 영도 골목길에 있는 삼진어묵 본매장 현관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제조가공소’라는 동판이 붙어 있다. 부산시가 만든 것이다.

박 부사장은 사옥을 겸한 이 건물 2층에 부산어묵체험역사관을 만들어 삼진어묵이 3대째 어묵을 만들어 온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어묵레시피경연대회와 어묵사진전도 연다. “어묵을 사기 위해 기회비용을 치르는 소비자가 삼진어묵 제품을 고르게 하려면 우리 제품이 차별성을 지녀야 합니다. 식품인 만큼 위생은 기본이고, 믿고 고를 만한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 업계 1위가 목표인가요?
“매출액이나 시장점유율로 1등을 하기보다 어묵 식문화를 선도해 어묵업계 리딩 컴퍼니로 키우고 싶습니다. 어묵업계의 애플이나 나이키 같은 회사죠.”

✚ 수출은 얼마나 하나요?
“매출의 5%로 미국, 뉴질랜드, 호주, 동남아, 일본 등에 합니다. 지난 10월 세계 피시 케이크 포럼에 참가했을 때 일입니다. 그때 프랑스와 일본 사람들이 삼진어묵을 케이스로 다뤄 깜짝 놀랐어요. 일본 가마보꼬(어묵) 시장, 세계 피시 케이크 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데 한국만 유독 피시 케이크 시장이 성장한 배경을 우리가 주도한 트렌디한 제품으로의 혁신에서 찾더라고요. 그래서 세계로 나갈 생각을 했어요.”

▲ 삼진어묵은 어묵 베이커리를 통해 반찬용이나 꼬치어묵으로 시장과 거리에서 팔리던 어묵을 디저트처럼 먹을 수 있도록 했다.[사진=뉴시스]
✚ 어묵 제품은 일본이 원조 아닌가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어묵 제조 기술이 앞섰고 어묵 소비문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트렌디한 어묵 베이커리와 어묵 디저트 문화는 우리가 역수출할 수 있어요. 미국에 일본식 스시 식당이 많은데 일본이 수출한 건 스시가 아니라 스시를 먹는 문화예요.”

그는 삼진어묵 혁신을 주도한 유통법인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제조법인 대표인 그의 아버지는 유통법인 명의의 직함이 없다.

✚ 삼진어묵의 DNA는 뭔가요?
“도전 정신과 수평적인 조직문화입니다. 시대와 시장이 빨리 변해 시장을 지키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도전해야 합니다. 아버지 시절의 공장 기계화도 당시로서는 큰 도전이었어죠.”

✚ 삼진어묵이 과연 지속가능할까요?
“항상 두렵고 초조합니다. 잠자리에 들면 문득 이렇게 해서 회사가 잘 돌아갈까, 이러다 우리 회사 망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이 저를 안주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 일반적으로 3세 경영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구성원들 대우는 어떤 편인가요?
“100년 기업을 만들려면 저는 4세 경영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저로서는 즐겁고 엄청난 희열을 느낍니다. 직원들이야 제가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시는 분들이죠. 권위의식에 젖지 않으려 자기 경계를 합니다. 리스크 관리는 해야겠지만 처우를 개선하려 노력하고요. 공장 밥 단가가 다른 회사보다 2000~3000원 비쌉니다. 잘 먹어야 한다는 건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에요. 한솥밥 먹는 식구들이니까요.”

삼진어묵의 생산공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한다. 중소 어묵제조 업체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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