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상실감 극복법

대국민담화 속 박근혜 대통령이 조명되고 정치권의 불협화음이 보도된다. 등장인물들은 어디가 아픈지 모두 찡그린 표정이다. 기가 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상처를 받은 건 국민들인데,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는다. 촛불을 든 당신, 누구에게 어떻게 위로를 받아야 할까.

▲ 국민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분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점입가경이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들에게 연일 충격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 더는 놀랄 것 없다던 사람들의 장담이 하루를 못 넘길 정도다. 그럼에도 권력자든 부역자든 진심으로 우리에게 사죄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이들에게 국민들의 퇴진 요구는 정치 공세일 뿐이다.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 집회는 투정에 불과하다. “촛불은 바람 앞에 꺼진다” “집회는 종북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는 발언을 일부 금배지의 단편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이러니 국민들이 아플 수밖에 없다. 뉴스를 봐도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삶이 팍팍한데 가슴까지 조여온다. 많은 전문가는 엄중한 처벌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최상의 처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뤄질 것 같지 않다. 탄핵 발의 날짜를 두고 여야가 한심한 다툼을 벌이고 있어서다. 촛불을 든 당신은 대체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할까.

“저항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 무엇보다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차벽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고 싶었다. 차벽은 정부와 시민사회를 가로막는 벽이다. 부당한 공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간 이 벽에 시민들이 어떤 액션을 취한 적이 없었다. 공공기물인 경찰차에 무언가를 붙인다는 건 위법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평화의 상징인 꽃을 차벽에 붙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시민들에게 한편으로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다 붙여놓고 보니 예쁘기도 하더라.”

미술가 이강훈 작가의 말이다. 그는 11월 19일 광화문 집회 때 경찰 차벽에 가지런히 붙은 ‘꽃 스티커(프로젝트 명 차벽을 꽃벽으로)’를 기획한 이다. 이 작가는 예술분야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세븐픽쳐스’에서 100만원을 모금한 뒤 SNS를 통해 작가 26명의 지원을 받아 꽃 스티커 2만9000장을 제작했다. 그리고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이를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붙인 것이다. 이후 매주 집회에서 ‘차벽’은 ‘꽃벽’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 풍자 포스터를 제작해 뿌렸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던 이하 작가는 “현실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예술의 사명”이라며 “풍자를 통해 국민들에게 웃음도 줄 뿐만 아니라 권력자의 무능함을 찌르는 날카로운 창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염원하는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예술이 아닌 법의 힘을 통해 국민을 위로하는 이도 있다. 곽상언 변호사(법무법인 인강)는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처 받은 국민들을 위한 위자료를 요구할 참이다. 곽 변호사는 “이번 사태로 국민들의 자긍심이 바닥까지 내려갔다”면서 “법률가로서 내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은 소송뿐”이라고 설명했다. 신청을 받은 지 48시간 만에 8000여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가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곽 변호사는 “청와대에 돌을 던지면 우리가 끌려가지만 대통령에게 소장을 던지면 대통령이 끌려 나올 것”이라며 “만약 위자료를 받으면 소송에 참가한 국민들이 성공보수금으로 지정한 금액 전체를 공익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설명했다.

 

예술이나 법처럼 정색하지 않아도 ‘위로’를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종찬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국민에게 큰 힘과 위로를 줄 것”이라면서 특별한 경험을 털어놨다. “광화문 집회가 끝난 날이었다. 술을 제법 마신 청년이 버스를 탔다. 그는 버스 안에서 ‘박근혜는 하야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다른 승객 몇 명이 그 선창을 이어받았다. 그러자 50대 중년 남성이 짜증을 냈다. ‘광화문에서 하면 됐지, 왜 버스에서까지 그러느냐.’

“저항이 곧 위로다”

양측의 감정이 고조되자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연출됐다. 금방에라도 주먹이 오갈 것 같았다. 이때 정체불명의 목소리 하나가 개입했다, 그 목소리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살얼음을 걷던 버스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정리됐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살뜰한 말 한마디가 격해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 것이다.

국민들이 정부에 목소리를 내는 모든 활동 자체가 ‘회복과 위로’라는 주장도 있다. 심리연구소 ‘함께’의 김태형 소장은 국민들이 받은 상처의 원인을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서만 찾지 않았다. 기득권이 행한 부정부패를 보고도 참아야만 했기 때문에 상처가 누적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번 게이트로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게 그의 말. 대표적인 게 ‘광장에 나온 국민들’이다. 김 소장은 “이미 국민들은 꽤 오래전부터 국가를 불신하면서도 참았지만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는 ‘더이상 참을 수 없는 계기’가 됐다”며 “다함께 모여 불의에 저항하는 활동 자체가 위안이 되기 때문에 매주 국민들이 광장에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