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얹혀살지 뭐

▲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실업자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사진=뉴시스]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성인이 돼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또다른 방식으로 얹혀사는 이들도 있다. 셰어하우스족이다. 얹혀사는 방식은 다르지만, 이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크다. 문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상실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지원을 받아 창업을 했던 김민준(가명·31)씨. 전도유망한 사업아이템 덕분에 벤처창업 대표로 청와대 만찬에도 참석했다. 창업 전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독립해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일용직 건설현장을 전전한다. 제품은 괜찮았지만 대기업의 살인적인 유통마진을 못 견뎌 파산을 피하지 못했다. 빚은 면책을 통해 해결됐지만 그의 마음은 편치 않다. 김씨는 “창업에 실패했다는 것보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경제적으로 부모님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게 더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영감(의원의 속칭)이 낙선해 졸지에 직장을 잃은 전직 보좌관 이철근(가명·45)씨는 보험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벌이는 시원찮다. 영업을 통해 얻는 수익보다 사람을 만나 쓰는 부수적인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다. 보험영업을 하면서 지인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다른 직장을 찾아봤지만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이씨는 “그나마 부모님께 얹혀서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변의 눈치가 보여 심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

민준씨와 철근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하지만 주위에선 인생이 모두 내 노력에 따라 흘러가는 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는 참 서글프다.”

부산이 고향인 박근영(가명·41)씨는 서울에 올라온 지 10년째다. 대기업에 다니지만 여전히 계약직이다. 급여가 정직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탓에 대출 받은 원룸 보증금조차 갚지 못했다. 다행히 최근 셰어하우스에 입주했다. 보증금 없이 한달에 내는 방세는 약 32만원. 닭장 같은 원룸보다는 넓고 깨끗해 만족스럽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에서는 마치 셰어하우스가 청년 주거환경 개선의 최선책인 것처럼 말한다. 장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청년들이 셰어하우스에 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결국 돈이 없어서 아닌가.”

캥거루족이든 셰어하우스족이든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상실감이다. 그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면 내집을 포기하고 살지는 않을 거다. 지금의 선택은 차선책일 뿐이다.” 민준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창업을 해보라는 정부 말을 믿고 창업했다가 시간과 돈만 뜯겼다. 최순실이 정부와 기업, 정책까지 뒤흔든 이번 사태를 봐라. 이런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되겠나? 하면 된다고? 웃기는 소리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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