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왜 기 못펴나

‘9988’이라는 말을 아는가. 국내 기업의 99%, 근로자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만큼 중소기업이 국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단가 후려치기, 정부의 정책 헛발질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어서다. 허울뿐인 상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사진=뉴시스]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해 중소기업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9988’ 등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슬로건이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소상공인 포함)는 2014년 기준 354만2350개에 달했다.

2011년(323만개) 대비 9.6% 증가한 수치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수 354만5473개의 99.9%를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 종사자 수는 1402만7636명으로 2011년 보다 11.1%(140만명) 증가했다. 이는 전체 근로자의 87.9%를 차지하는 엄청난 수치로 이 비중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전체기업의 99%, 전체 고용의 88% 차지한다는 ‘9988’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계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셈이다.

중소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이다. 중소기업의 성장ㆍ발전이 고용증대, 소득증대, 소비와 투자 활성화 등이 이뤄지는 경기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의 대기업이 나라를 먹여 살리기보다 많은 중소기업이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국가 경제의 안전성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질적 수준이 양적확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있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종사자 100명~199명 중소제조업의 2014년 영업이익률은 4.9%에 불과했다. 50명~99명 사업장과 200명~299명 사업장의 영업이익률도 각각 4.9%, 6.0%에 그쳤다. 중소기업의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질적 성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사이 대기업은 몸집을 불렸다. 특히 10대 그룹의 의존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CEO스코어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사이(2005~2015년) 30대 그룹에서 차지하는 10대 그룹의 순이익 비중은 79.2%에서 98.3%로 치솟았다. 대기업 전체 순이익의 대부분을 10대 그룹이 차지한 셈이다.

여기에 올 상반기 기준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550조원으로 2009년 271조원 대비 두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30대 그룹 전체 고용에서 10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73.2%에서 2015년 72.1%로 오히려 감소했다. 기업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은 중소기업이 부진한 이유를 저성장ㆍ저금리 기조에 따른 내수부진에서 찾고 있다. 중소기업의 낮은 기술력과 미흡한 국제화 전략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 부진의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력이 부족해서다.

중소기업은 높은 시장점유율과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대기업과 달리 시장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수익성이 조금이라도 악화되면 곧바로 위축되고 이는 근무환경 악화로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고급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은 더 사라지고 투자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활력 잃어가는 중소기업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원인이 중소기업만의 잘못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을 위협하는 외부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어서다. 이런 외부요인으로는 크게 세가지가 있다. 첫째, 오래 전부터 문제점이 제기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다. 대기업이 저성장과 수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쉽게 볼 수 있었던 동네 커피숍ㆍ제과점ㆍ슈퍼 등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대기업의 자본력을 등에 업은 프랜차이즈 업체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가 더 심화될 가능성도 높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아주던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의 기간 만료가 내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 중소기업 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부분별한 사업 확장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사진=뉴시스]

적합업종제도를 법제화하지 않는 이상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을 방법이 없어지는 셈이다. 둘째,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화다. 대기업 매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중소기업은 사실상 대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다른 경쟁사나 경쟁국가로의 수출이 차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중소기업의 국제화를 막을 뿐만 아니라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도 단가인하 압력, 특허ㆍ핵심인력 빼앗기, 일방적인 거래중단 등을 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 하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헛다리’ 정책이다. 정부는 여전히 부동산 시장 회복, 대기업 위주의 투자 등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만 급급하다. 오랜 시간과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중소기업 육성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문제는 시장 스스로가 해결하기 어렵다. 상생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이익 극대화라는 경제 논리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지원에 나서라는 의미가 아니다. 중소기업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불공정행위 처벌 수위 높여야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시장잠식을 위한 수직계열화를 규제해야 한다. 대기업에 종속된 기업이 아닌 동등한 협력 관계가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단가 후려치기 등의 불공정행위를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이 얻은 초과이익을 협력 중소기업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여기서 발생한 자금이 ‘투자증가→생산증가→고용증가→소득증가→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많은 ‘강소기업’이 출현하고 한국 경제에도 활력이 돌 것이다.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호號를 구할 해법이 중소기업에 있다는 얘기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