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IRTH by UTMOST 가보니 …

누군가에게 버려진 무언가는 잊힐 수밖에 없는 걸까. 버려진 그들에게 ‘조명’을 선물한다면 다시 생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치호 아트디렉터가 이끄는 디자인그룹 UTMOST는 빈티지 소품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쓸모없는 모형에 ‘영감’을 불어넣은 ‘리벌스(REBIRTH)’전을 기획했다. 누군가 버린 동물 모형에 직접 제작한 LED 조명을 설치, ‘새 생명’을 준 것이다.

▲ 권소진 작가의 펭귄 시리즈, 박영철 작가의 강아지 시리즈, 박민주 작가의 까마귀 조명. [사진=UTMOST제공, 왼쪽부터]
정치호 아트디렉터가 총 기획을 맡았고, 권소진, 박민주, 박영철, 송정섭 작가(이상 조소), 김재현 금속작가, 김현희, KIRHO 작가(이상 가구) 등 UTMOST 소속 작가들이 작업했다. 이들이 만든 리벌스 작품은 총 70여개. 버려진 동물 모형 장난감을 활용한 블랙 앤 화이트 컬러의 대형 펭귄 장식대, 1970년대 한국 TV의 아날로그 디자인에 LED 기능을 덧붙인 ‘월넛 TV장’, 전통 반닫이에 페미니즘 요소를 가미한 콘솔 테이블 등이 대표 작품이다.

#1 작은 조명, 새 생명 = 6개월 전 빈티지 소품시장을 찾았던 정치호 아트디렉터는 작은 장난감을 발견했다. 한때 ‘교육용’으로 쓰였던 동물 모형의 장난감이었다. 겉은 멀쩡했다. ‘작은 조명’만 비춰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잊히고 버려진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소품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모형들을 되살릴 방법을 구상한 것이 ‘리벌스’전의 시작이었습니다(정치호 아트디렉터).” 작업실로 돌아온 정치호 아트디렉터는 박민주, 권소진, 박영철, 김재현, 송정섭 작가와 함께 ‘작은 동물 모형만을 위한 미니 조명’을 제작, 모형의 머리에 결합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이식 작업’이 끝나자 이 모형들은 새 생명을 얻었고, 이내 작품으로 환생했다. 정치호 아트디렉터는 “동물 모형들을 재탄생시킨 작업 과정들은 하나의 예술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정치호 아트디렉터의 월넛 TV장. [사진=UTMOST 제공]
#2 낡음의 변주, 새 작품 = ‘촌스러움’의 대명사였던 옛날 국산 TV를 리벌스한 작품도 흥미롭다. 1970년대 국산 TV 수상기에 LED TV를 접목한 ‘작은 장롱欌籠’이다. 옛것과 새 것이 만나면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낡고 원초적인 디자인이라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주變奏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 작품을 KKLEM과 함께 작업한 정치호 아트디렉터는 “과거의 물건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버려진 것에 불과하다”면서 “하지만 그런 과거의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면 현재를 넘어 미래가 된다”고 말했다. 가치를 유지하거나 승계할 수 있다면 과거가 현재요, 현재가 곧 미래라는 얘기다.

#3 틀 깬 반닫이, 본질의 부활 = 조선시대 규방閨房에서 애용되던 반닫이의 리벌스도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김현희 작가는 기존 4면을 모두 떼어낸 뒤 콘솔 형태의 ‘프레임’만 남긴 독특한 반닫이를 만들었다. 가구의 틀을 허무는 대신 틀만 남긴 셈인데, 여기엔 ‘안채에 갇힌 여성의 한恨, 삶의 제약 등을 부수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무엇이든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져야 본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희 작가는 “시대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규방 가구에는 사실 여성들의 슬픔이 담겨 있다”면서 “공간적 제약과 함께 삶 자체가 ‘안’으로 향하도록 규정된 여성의 삶을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반닫이의 틀만 남겨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말했다. 반닫이 작품을 디렉팅한 정치호 아트디렉터는 “작품 반닫이는 안과 밖의 개념을 재정의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 김현희 작가의 반닫이. [사진=UTMOST 제공]
동물 모형, 옛 TV장, 전통 반닫이를 리벌스한 이번 전시는 과거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탄생시켜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확고하게 형성된 고정 관념을 재해석하려는 작가들의 노력도 돋보인다. 10월 12일 서울 논현동 윤현상재 스페이스 B-E갤러리에서 막을 올린 리벌스전은 11월 10일까지 열린다.
권세령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christin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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