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야 할 일

정부는 가계에는 소비를 하라고, 기업에는 투자를 하라고 계속 금리를 낮춘다. 하지만 가계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소비를 하느냐고, 기업은 경기가 불확실한데 어떻게 투자하느냐고 반문한다. 그 와중에 저성장 기조는 오늘도 계속된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일까.

▲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규제하지 않으면 가계소득도 늘어날 수 없다.[사진=뉴시스]

원론적인 얘기들을 좀 해보자. 한 국가의 경제활동 상황을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지표 중 하나가 국내총생산(GDP)이다. GDP는 한 나라의 영역 내에서 국가의 3대 경제 주체인 가계ㆍ기업ㆍ정부가 일정기간 생산활동에 참여해 창출한 부가가치 또는 최종 생산물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합계다. 국내에 거주하는 비거주자(외국인)에게 지급되는 소득, 국내 거주자가 외국에 용역을 제공함으로써 수취한 소득까지 모두 포함된다.

가령 한 나라의 경제주체들이 지난해 생산한 제품이 100개였는데, 올해 103개를 생산했다면 올해 GDP 성장률은 3%다. 생산된 제품은 가계와 기업, 정부가 다시 소비한다. 원론적으로 자본주의에서는 100개를 생산하면 100개를 모두 소비해야 경제가 굴러간다. 생산물이 생각보다 부족하면 더 많이 생산하거나 수입하고, 많으면 수출로 균형을 맞춘다. 여기서 기업의 소비는 일반적으로 ‘투자’라 부르고, 정부의 소비는 ‘정부지출’이라고 한다. 표현법은 달라도 사실상 모두 ‘소비’다.

경제의 3주체는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가계가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면 그 대가로 가계는 임금을 받는다. 그 돈으로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소비한다. 가계는 임금의 일부분을 은행에 저축하기도 하는데, 이 돈을 기업이 빌려 설비투자에 쓴다. 설비투자는 생산량과 고용 증대, 가계소득 확대로 이어진다.
 

때문에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주체가 가계라면 돈의 흐름도 원활하고 경제는 활발하게 돌아간다. 그럼 우리나라는 이런 구조대로 잘 성장하고 있을까.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 GDP는 현재 기준으로 1조3212억 달러(약 1498조원)로 세계 11위다. 하지만 GDP 성장률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2010년을 제외하면 우리의 연간 GDP 성장률은 2~3%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실제 GDP 성장률은 연초 전망치를 대부분 밑돌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는 3.1%였지만 최근 2.8%로 하향 조정됐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3.1%라는 점을 고려하면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우리나라 GDP 성장률이 이처럼 낮아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소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2006년 이후 국민 1인당 GDP도 10년째 2만 달러 중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지난해 1인당 GDP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2.6% 감소한 2만7340달러(약 3102만원)였다. 국민 생활수준이 몇년째 정체돼 있다는 얘기다.

세계 평균 밑도는 GDP 성장률

그러자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다시 말해 소비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는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그럼에도 경기는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래 경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불안감이 커지면서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가계소득은 늘지 않으니 소비가 늘지 않는 거다. 가계소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노동을 통한 급여소득, 자영업자들의 영업에 따른 이익소득, 저축이나 투자를 통해 발생하는 이자소득이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급여는 연평균 6.4% 증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이익 소득은 연평균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자소득은 되레 1.9%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내 주택가격은 93% 올랐다. 2000년 1억원이던 집값은 2015년 1억9300만원이 됐다는 얘기다. 그나마 있던 소득도 죄다 부동산에 묶인 셈이다.

더구나 우리 경제에서 가계와 기업의 소득 비중을 살펴보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5년 동안 가계소득 비중은 67.9%에서 62.0%로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 비중은 17.6%에서 24.6%로 크게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득의 균형이 깨진 거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앞서 언급했듯 기업에 투자금을 빌려주는 주체가 가계여야 건전한 선순환 경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돈이 가장 많아야 할 가계는 사상 최대의 빚에 시달리고 있다. 가계 부채는 약 1200조원을 넘어섰다. 반대로 가계에 돈을 빌려야 할 기업은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가계는 돈이 없어 소비를 못하고, 기업은 돈이 있지만 불안해서 소비를 하지 않는 구조다. 선순환 경제에 제동이 걸렸다는 얘기다.

▲ 금리만 낮춘다고 소비가 늘어나지는 않는다.[사진=뉴시스]


우리 경제가 성장기일 때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자본 없이 성공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저성장이 무서운 이유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부가 있는 곳으로 자금이 더 몰리는 저성장의 역설은 소득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이처럼 역설적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는 걸까. 소비를 통해 성장률을 회복할 수 없는 걸까. 과거처럼 고성장하는 게 어렵다면 방법은 하나다.

일단 양극화부터 해소해서 가계소득을 늘려주는 거다. 그러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복지정책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양극화 해소를 전제로 무조건 기업에 부담을 주자는 얘기는 아니다. 기업의 투자 위축은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국내 소비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영업이 함께 살아야 한다. 골목상권 규제가 더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

모두가 살려면 상생해야

대신 기업의 투자금은 신사업으로 물고를 돌리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1999년 IT붐이 일던 때처럼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면 기업의 투자가 늘고 고용이 늘어 가계의 소비도 늘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 역시 무조건 저임금 노동력을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최고의 수단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 기술혁신에 투자하고, 직원들에게는 좋은 대우를 해 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가계소득이 늘고 소비여력이 생기면 저성장도 끝낼 수 있을지 모른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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