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해외에서 친족기업 알머스에 일감 몰아주기 논란

 

▲ 삼성전자는 연간 500만대의 목업폰을 공급받는다. [사진=뉴시스]

휴대전화 매장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모형폰’. 정식 명칭은 ‘목업폰(Mockup)’, 흔히 더미폰으로 불린다. 별 제품이 아닌 듯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는 연간 500만대가 훌쩍 넘는 목업폰을 납품 받는다. 삼성전자로부터 목업폰 사업만 따내도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알짜 비즈니스’인 목업폰 사업을 지난해 알머스라는 다소 생소한 기업이 수주했다. 취재해보니 옛 영보엔지니어링, 삼성그룹 친족회사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 취재했다.

 

■ 삼성전자 목업폰 시장규모 800억원, 알머스 ‘알짜사업’ 수주
■ 삼성그룹 친족기업 알머스, 생산장비도 없이 목업폰 사업 맡아
■ 삼성전자 중국 후이저우惠州 공장서 목업폰 거래
■ 국내 시선 피해 해외서 일감 몰아준 게 아니냐는 지적 나와

스마트폰 액세서리 제조업체 알머스(옛 영보엔지니어링)가 지난해 중순 삼성전자를 등에 업고 ‘목업폰(Mockup·모형폰) 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단독 확인됐다. 알머스는 지난해 2월 갤럭시S6 목업폰을 파일럿 형식으로 삼성전자에 납품했다. 그해 4월에는 자신들의 첫 공식 목업폰인 갤럭시A8을 배정 받았고, 2015년 8월과 올 2월엔 각각 갤럭시노트5, 갤럭시S7의 목업폰을 공급했다.

목업폰은 쉽게 말해 ‘모형폰’이다. 휴대전화 매장에 전시된 가짜폰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흔히 더미폰이라고 불린다. 목업폰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만들지 않는다. 이를 생산해 납품하는 협력업체가 따로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08년부터 알머스가 등장하기 직전인 2015년까지 중국 소재 협력업체 3곳이 목업폰을 생산·납품했다.

언뜻 별 제품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수주만 성공하면 목업폰만큼 안정적인 수익원도 없다. 신형 휴대전화를 론칭할 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연간 500만대가량의 목업폰을 납품받는다. 목업폰의 대당 제조가격이 8~14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 목업폰의 시장 규모는 최대 연 800억원에 이른다. 목업폰이 ‘알짜 사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생산장비 없이 목업폰 사업 수주

목업폰 사업을 시작한 알머스는 삼성그룹의 친인척 회사다. 주로 휴대전화(스마트폰) 액세서리를 생산한다. 올 3월 영보엔지니어링에서 사명社名을 변경했다. 지배주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셋째 누나인 이순희씨와 그의 아들 김상용 알머스 대표. 둘의 지분율은 각각 13.0%, 76.1%(2015년 말 기준)다. 회사 매출의 90%가량은 삼성전자와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친인척 회사인 알머스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공교롭게도 알머스가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목업폰 사업 역시 같은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액세서리만 생산하던 알머스가 목업폰 사업을 덥석 수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머스의 ‘삼성전자 목업폰 사업 준비→수주→납품 과정’은 잘 짜인 각본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됐다.
 

알머스가 목업폰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나돈 건 2014년 말~2015년 초다. 때마침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구매팀 그룹장이던 A전무(당시 삼성전자 상무)가 알머스에 영입돼 소문의 불씨가 강해졌다. 흥미롭게도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알머스는 2015년 2월 갤럭시S6의 목업폰을 삼성전자에 공급했다. 수량이 얼마 안 되는 ‘파일럿 제품’이었다.

동시에 알머스는 목업폰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외주업체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목업폰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스탠스를 보인 것이다. 이 회사의 비밀스러운 행보는 더스쿠프(The SCOOP)가 입수한 목업폰 제작업체의 이메일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는 알머스로부터 목업폰 제작 의뢰를 받은 B사 내부에서 오간 것이다.

“영보ENG(알머스의 당시 사명)와 삼성 휴대전화 목업에 대한 금형 제작, 부품 생산을 목적으로 영업을 진행 중”이라면서 시작된 이 이메일에는 ▲기구설계 및 양산 문의 ▲금형제작 리드타임(LT) 및 단가 점검 ▲공급가능 생산량(CAPA) 점검 등 알머스의 방문 목적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월 300K(30만개) ▲2~3월, 8~9월 월 600K(60만개) 수준(전략모델 출시 전) 등 구체적인 목업폰 생산량도 쓰여 있다. “삼성그룹에서 금형·부품 등의 비용 견적을 산출 중이다. 2015년 ○월 ○○일 회신 예정”이라는 문구까지 기록돼 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알머스가 삼성전자와 목업폰 제작 관련 조율을 마무리했다는 뜻이다.

우연偶然인지 필연必然인지 알머스가 목업폰 제작업체를 수배하자 삼성전자는 ‘중국 소재 목업폰 협력업체 3곳의 현장을 점검하겠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2015년 4월 20일~24일 4박5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 점검에서 삼성전자는 신뢰성·기구검증·기구개발·공정기술·출하·GPM(Global Product Management)·구매 등 7개 부문을 체크했다. 품질관리 시스템(신뢰성), 완성품 품질 관리 상태 점검(기구검증), 업체별 생산력 및 공급대응력 평가(구매)를 비롯한 점검 영역도 다양했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7개 부서가 총동원돼 목업폰 협력업체를 점검한 건 당시가 처음이었다”면서 “특히 ‘삼성전자에 파일럿 제품을 공급한 알머스가 목업폰의 사업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 후에 진행된 점검이었기 때문에 일부 협력업체가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털어놨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4박5일간의 현장 점검 결과, 삼성전자의 목업폰 협력업체 3곳 중 1곳이 탈락하고, 공교롭게도 그 자리를 알머스가 꿰찼다. [※ 참고: 삼성전자 측은 “탈락한 협력업체의 계약종료일은 2015년 말”이라면서 “알머스가 그 자리를 빼앗은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탈락한 협력업체는 4월 현장 점검 이후 삼성전자로부터 단 한건의 물량도 받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주장과 달리 현장 점검일이 사실상 계약종료일이었다는 얘기다.]
 

당연히 논란이 일었다. 목업폰을 단 한번도 자체 생산해본 적 없는 알머스가 어떻게 삼성전자의 협력업체가 됐느냐는 이유에서였다. 더구나 알머스는 당시 목업폰 생산장비(기구)도 없었다. 이런 논란은 ‘친인척 기업인 알머스에 일감을 주기 위해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를 점검한 게 아니냐’는 뒷말로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수차례 제기된 ‘알머스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의도적으로 피하기 위해 해외시장을 택했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목업폰의 모든 거래가 삼성전자 중국 후이저우惠州공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목업폰 사업은 중국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한국에선 그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국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의 한 지역 언론은 2015년 중순 알머스의 목업폰 사업 준비 소식을 보도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누나의 아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영보가 더미폰(목업폰) 하청업체를 물색하고 있다(在东莞,一家由三星集团总裁李健熙姐姐的儿子控股的名为韩国永保株式会社的公司正在积极寻找生产模型机配件的供应商,他们将把在中国采购的这些配件运往越南,在越南分厂完成组装后再交货给三).”

 

삼성전자 관계자는 “알머스가 목업폰 사업을 수주한 건 정상적인 구매 프로세스의 결과물”이라면서 이렇게 반박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오랫동안 생산해온 알머스의 기술력과 협력도 등을 믿을 만했다. 더구나 2015년 초 의욕적으로 론칭한 갤럭시S6의 외관이 메탈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목업폰 제작업체가 필요했다. 기존 협력업체는 메탈 목업폰을 대량으로 생산할 능력이 부족했다.”
 

▲ 알머스의 대對삼성전자 매출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삼성전자가 이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이유다. 사진은 2012년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지적하는 송호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뉴시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삼성전자가 ‘메탈 스마트폰(갤럭시A3·갤럭시A5)’을 론칭한 건 2014년 10월께다. 당시 목업폰은 기존 협력업체들이 생산해 납품했다. ‘메탈 외관’ 때문에 기존 협력업체를 배제한 건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삼성전자가 협력업체의 기술력·품질 등을 믿지 못해 현장을 점검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협력업체 중 1곳을 탈락시켰다고 치자. 그렇다면 알머스는 이 협력업체보다 훌륭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거나 기술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런데 당시 알머스는 목업폰 생산장비도 없었다. 알머스가 삼성전자로부터 목업폰 사업을 따내기 전 한 일이라곤 외주업체를 수배하는 것밖에 없었다. 이게 정상적인 구매 절차로 보이는가. 업계 관계자 그 누구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알머스 밀어주기’ 논란을 법적 심판대에 세울 수 있느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금지하기 위해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고 있다. 근거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제23조). 기준은 다음과 같다.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회사(비상장사 20%)와의 거래일 것” “거래 금액이 계열회사 매출 비중의 12%를 넘거나 200억원을 넘을 것”. 이 법을 지키지 않은 기업 오너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부당하게 일감을 받은 수혜기업에는 최대 3년 평균 매출액의 5% 과징금이 부여된다.

그런데 알머스는 이 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친족회사이지만 계열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알머스는 2007년 7월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됐다. 공정위는 임원 겸임, 채무보증 여부 등 ‘독립경영 인정 기준’에 따라 계열분리를 허용하고 있는데, 알머스가 여기에 부합했다. 독립경영 인정 기준에 ‘매출’이 없다는 점이 알머스에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언급했듯 알머스의 매출 중 90%가량은 삼성전자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계열 분리 요건을 갖춘 두 회사는 별개라고 판단해야 한다”면서 “알머스를 둘러싸고 제기된 목업폰 일감몰아주기 논란은 공정위가 나설 사안이 아니다”고 발을 뺐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많다. 이총희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친족분리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가 계속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면서 “능력이 없는 친족기업을 규제하려면 독립경영 인정 기준에 매출 비중 등 요건을 추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액세서리 이어 목업폰까지…

공정거래법으로 심판하기 어렵다면 부당 행위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병우 제이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왜곡해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면서 “삼성전자와 알머스 사이에 부당한 행위가 있었다면 넓은 개념의 ‘배임죄’를 적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알머스의 실적은 ‘정(+)의 관계’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늘면, 알머스의 매출도 커진다. 삼성그룹이 액세서리·목업폰 등 일감을 대놓고 몰아준 결과다. 그럼에도 알머스는 삼성그룹의 계열사가 아니라는 명분으로 어떤 규제도 받고 있지 않다. 우리가 ‘알머스 논란’을 허투루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윤찬·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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