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매장이 중국서 힘 못쓰는 이유

월마트도, 까르푸도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중국시장에서 위세를 떨치던 대형할인매장 중 꽁무니를 내뺀 곳도 많다. 중국시장에 ‘스몰 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가파르게 치솟은 인건비와 부동산 가격, 변덕스러운 소비자에게 민첩하게 대응하는 데 성공한 ‘소형매장’이 힘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 2014년 중국 항저우杭州의 월마트는 경영부진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업했다.[사진=뉴시스]
# 1996년 중국 선전深圳에 1호점을 개점하면서 대륙에 진출한 월마트. 하지만 2012년 이후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월마트 충칭重慶점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개점 10년 만인 2013년 폐업했다. 2014년 기준으로 중국 내 월마트는 16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2014년 12월에는 직원 250명을 구조조정하기도 했다.

# 월마트보다 1년 먼저 중국에 진출한 까르푸는 사정이 더 안 좋다. 중국체인경영협회(CCFA)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까르푸의 연매출은 전년 대비 12.3% 감소한 401조221만 위안에 그쳤다. 중국 유통체인 100대 기업 중 가장 큰 하락폭이었다. 지난해 2분기 중국 내 점유율도 3.4% 포인트에 머물렀다. 
 
중국 시장에 ‘스몰 바람’이 불고 있다. 월마트, 까르푸를 비롯한 대형할인매장은 맥을 못추는 반면, 소형매장들이 되레 안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홍콩을 대표하는 드럭스토어 왓슨의 매장수가 2010~2014년 5년간 3배나 늘어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왓슨의 중국 내 매장은 현재 2000개 이상이다. 세븐일레븐, 로손 같은 편의점도 지난해 중국 매출이 전년 대비 15.2% 증가했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대형할인매장이 중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를 ‘대륙의 경기침체’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선 소형매장의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중국시장에서 새우가 고래를 압도하는 이유는 뭘까. 이 답을 찾기 위해선 중국 유통시장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중국의 유통시장 변화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부터 지금까지 총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4단계는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중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수용기(2000~2003년), 중국 유통시장에 맞춰가는 적응기(2004~2007년), 경제 호황과 더불어 세력을 확장하는 발전기(2008~2012년), 온라인 시장 등장과 맞물린 도태기(2013~2016년)다.

WTO 가입 초기인 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 정부가 수입품 규제를 완화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시장 진출이 가속화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발전기에 해당하는데, 대부분의 유통업체가 호황을 누렸다. 이 기간 중국의 가처분 소득이 크게 늘어난 덕이었다. 중국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 도시주민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은 2008년 1만5781위안(약 258만원)에서 2012년 2만4565위안(약 430만원)으로 1.56배가 됐다.

성장일로를 걷던 중국시장에 둔화의 시그널이 울린 건 2013년, 부동산 가격과 인건비가 오르면서다. CCFA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100대 유통기업의 인건비와 임대료는 전년 대비 각각 4.2%, 8.6% 올랐다. 고정비용이 치솟자 직원수가 많고 부지가 넓은 대형할인매장의 매장 확장 속도가 둔화됐다. 대형할인매장이 임대료가 저렴한 교외로 자리를 옮기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 토시히토 상하이 Y&F유한공사 부사장은 도태기의 중국 유통시장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은 소비계층이 세분화돼 있다. 땅 덩어리가 큰 만큼 지역색도 뚜렷하다. 평균 200~300㎡의 소형매장이 시장에서 파이를 키울 수 있었던 이유다. 소비자의 변화에 날랜 대처가 가능했던 거다. 상대적으로 임대료 상승의 타격도 덜 받았다.”

부진의 늪에 빠진 대형할인매장

하지만 중국시장의 변화는 이게 끝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WTO 가입 16년 차에 접어드는 2017년을 ‘변화의 시간축’으로 내다본다. 중국 유통시장에 큰 변화가 찾아오는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WTO 회원국들의 반대로 중국에게 부여하지 않았던 ‘시장경제지위(Market Economy Status)’의 유예기간이 올해로 끝나기 때문이다. MES는 교역하는 상대국가의 경제활동이 정부가 아닌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고 인정할 때 부여하는 지위다. MES를 획득하면 수출입 상품에 부과되는 관세율이 낮아져 해외기업들의 중국진출이 활발해질 공산이 크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시장도 중요한 변수다. 중국의 온라인 시장은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빠링허우(19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주요 소비층에 편입하며 급격하게 커졌다. 유통마진이 적어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다는 것과 오프라인에 비해 다양한 품목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빠링허우를 끌어당겼다. 지난해 중국 온라인시장 거래액은 3조8000억 위안(약 663조67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6.2% 늘어났다.

그럼에도 중국을 흔드는 ‘스몰 바람’은 당분간 계속 불 것으로 보인다. 해외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더라도, 온라인 시장이 더 커지더라도 중국 소비자는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 관심을 갖을 공산이 커서다. 더구나 대형할인매장이 맘놓고 세력을 불릴 만큼 부동산 비용이 싸지도 않다. 그렇게 ‘큰 중국’이 이젠 ‘작아졌다’는 얘기다.

Mini interview | 만 토시히토 상하이 Y&F유한공사 부사장

“중국서 덩치로 승부 말라”

지난 22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중일 국제마케팅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주최한 이 세미나에는 하나다 코조 시세이도 프로페셔널 CEO, 리이예 광동연합 전자상거래 CEO 등이 참석해 중일 마켓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중 만 토시히토 상하이 Y&F유한공사 부사장을 만나 중국 유통시장의 현주소와 한국 기업의 생존전략을 물어봤다.

▲ 만 토시히토 상하이 Y&F유한공사 부사장.[사진=지정훈 기자]
✚ 중국서 소형매장이 안정적 성장을 거듭하는 이유는 뭔가.
“중국은 지역마다 특색이 다르고, 소비계층도 세분화돼 있다. 때문에 변화의 물결도 다양하고 빠르다. 중국은 WTO에 가입한 그 어떤 국가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변해왔다. 하지만 대형매장은 덩치가 크다보니 임금이나 임대료 상승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변화에도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대형유통업체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졌고, 출혈경쟁 양상을 띠었다. 반면, 소형매장은 규모가 작은 만큼 융통성을 발휘하기 쉬웠을 것이다.”

✚ 중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꾀하는 우리나라 대형유통업체에는 좋은 소식이 아닌 듯하다.
“중국에선 덩치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형태로 시장에 진입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쉽게 말해 중국에선 전체 매장수를 무작정 늘리는 것보다 특정 소비층을 겨냥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전략이다.”

✚ 중국시장이 전환기를 앞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 WTO는 2001년 중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관세장벽이 무너질 것을 염려해 최장 15년간 MES를 주지 않는 유예기간을 뒀다. 그 기간이 올해로 끝난다.”

✚ 중국시장에 어떤 변화가 일 것으로 보나.
“정부 정책이나 관세율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중국 유통시장에 뛰어들려면 지금부터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해 시장 진입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 우리나라 기업에 조언을 한다면.
“중국시장의 파이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도 늘어날 게 불보듯 뻔하다. 변화가 일기 전에 움직여야지 변한 뒤엔 너무 늦을지 모른다. 중국시장의 특징을 다시 한번 검토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강다은 더스쿠프 기자 eundak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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