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9단 김영호의 City Trend

▲ 공중화장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위험한 곳이다.[사진=뉴시스]
서울 강남역 부근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보면서 20여년 전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 살인사건이 떠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혼자 공중화장실에 가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는 거다. 선진국으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는 20여년간 선진국 도시에서 일어나는 트렌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마켓서베이를 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외곽에 위치한 ‘에반스톤’이라는 유명한 교육도시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노스웨스턴’ 대학교를 구경하고 근처에 사는 지인을 만났다.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패스트푸드로 가볍게 점심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헤어질 때까지는 별일이 없었다. 그런데 헤어져 돌아서는 순간부터 웬일인지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부글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시카고 중앙 유니온역에 도착했다. 중앙역답게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엉거주춤한 자세에다 얼굴은 상당히 일그러진 상태로 화장실 표시판을 찾는 필자를 많은 이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화장실 표시판만 보고 정신없이 걸을 뿐이었다.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이 그토록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공중화장실의 의미

결국 도착한 지하 3층의 공중화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비어 있는 화장실 어느 칸을 향해 몸을 날린 뒤 어깨에 멘 배낭을 잽싸게 내려놓고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1층의 그 많던 사람들이 왜 여기엔 단 한사람도 없는지 인지조차 못했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싸했다. 필자를 둘러싼 묘한 공기와 이상 징후를 감지해서다. 급하게 화장실 문을 밀고 들어올 때는 보이지 않던 주위 환경이 점차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필자가 들어선 칸은 따로 문이 달려 있지 않은 채 변기만 덩그러니 있어 프라이버시라고는 단 한 조각도 보장해 주지 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어둑한 조명 아래로 수많은 눈동자와 검붉은 입술들이 보였다. 10여명의 흑인들이 사방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거다.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생활하는 홈리스(Homeless)들이었다. 당연히 화장실은 그들의 휴식처이자 집이었던 셈이다. 필자만큼 이들도 놀랐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동양에서 온 작은 남자가 갑자기 자신들의 고요한 휴식처에, 그것도 문을 박차고 들어와 큰 소리를 내면서 볼일을 보고 있는 장면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쳤을까.

볼일을 급히 본 후에는 어떻게 뒤처리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 심정으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과 함께 공포가 찾아온다.

이후 필자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공중화장실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확실히 이해했다. 미국인 대부분은 공중화장실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위험한 장소라서다. 선진국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특히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공중화장실은 더욱 그렇다. 그 이후 외국에선 아무리 급한 볼일이 있어도 공중화장실엔 가지 않는다.

예쁜 공중화장실보다 안전한 공중화장실

그럼 공중화장실 관련 사고를 줄일 방법은 없을까. 먼저 전국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중화장실 중 사람의 왕래가 적은 화장실은 폐쇄해야 한다. 이렇게 절약된 화장실 관리비를 대체 서비스에 투입하는 게 현명하다. 둘째, 지금까지는 쾌적한 공중화장실 만들기에 자원을 투입했다면 이제는 ‘안전한 공중화장실’ 만들기를 할 차례다. 외관을 치장하는 것보다 출입구에 CCTV를 설치하고, 조명을 밝게 하며, 이상한 느낌이 들면 경찰을 호출할 수 있는 비상시설물 등을 갖춰야 한다.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만일 피치 못해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면 항상 2명 이상이 이용하라는 거다. 아니면 참는 게 상책이다. 안전한 공중화장실, 사람들이 근처에 있어서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중화장실을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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