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값으로 승부하지 않는 PB의 경제학

▲ PB상품이 유명브랜드 못지않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대형마트가 변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화장품 브랜드를 만드는가 하면 스쿠터까지 판매한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쇼핑 트렌드와 맞아떨어져 PB상품도 인기다. 더 이상 싼값으로만 승부하지 않는 PB 시장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까.

주부 김모씨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 PB(Private Brand)상품을 애용한다. 처음에는 다른 유명브랜드보다 싼값 때문에 PB상품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싼 게 비지떡이라는데…’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품질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거다. 식품을 구입할 때는 더욱 그랬다. 돈 몇 푼 아끼겠다고 식구들한테 덜 좋은 걸 먹이는 건 아닌지 약간의 죄책감도 들었더랬다.

요즘엔 일부러 PB상품을 찾아다니는 경우도 많다. 쓰다 보니 NB(National Brand)와의 품질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PB상품을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전에는 ‘무조건 싼 것을 사는 쇼핑’이라고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실속 있고 현명한 쇼핑’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PB란 대형유통업체가 제조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어 생산한 후 자체상표를 붙인 ‘자체개발상품’을 말한다. 처음에는 종류도 적고 싼 가격만 강조하는 PB상품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유통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NB 못지않은 품질에 합리적 가격까지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더 이상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는 얘기다.

PB상품은 유통업체 애호도가 강한 유럽에서 먼저 개발됐다. 많은 소비재들의 제품수명주기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제품 간 특성과 품질에서 차이가 거의 없어져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된 탓이다. AC 닐슨의 조사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에서 PB상품은 NB에 비해 평균 31%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점유율도 유통업체 전체 상품의 15% 정도다(PLMA Yearbook・2012). 유럽과 북미에 비해 아시아에서는 아직 10% 내외로 높지 않다. 하지만 홍콩을 시작으로 한국과 대만, 인도네시아에서 최근 연간 성장률이 20% 내외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7년 이마트에서 첫 PB 우유를 출시하며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대형할인마트를 중심으로 PB상품이 증가하기 시작해 현재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3대 할인점이 PB상품을 만들고 있다. 매출액 비중도 전체의 20%를 훌쩍 상회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격・품질은 물론 스타일과 독특함이라는 요인까지 고려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추세다.

소비자들도 이제 PB상품에 유명브랜드 못지않은 품질과 스타일, 심지어 개성까지 바라고 있다. 무조건 싼 게 아니라 ‘이유 있는 싼 가격’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성공한 일본의 ‘무인양품’만 봐도 알 수 있다. 100% PB상표만으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입지를 구축한 영국의 ‘막스앤스펜서’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유통업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1~2주일에 한 차례 쇼핑하는 바쁜 소비자들을 위해 업체들은 식료품 쇼핑과 패션, 엔터테인먼트 등을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을 제공하려 애쓰고 있다. 그것을 보면 PB상품의 성공여부가 유통업체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에서 PB상품이 얼마큼 제품 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지, ‘값싼 대체브랜드’의 이미지를 벗고 어떻게 유명 브랜드만큼 소비자의 신뢰와 애호도를 얻게 될지 시험대에 올랐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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