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구조조정의 부메랑

정부가 ‘대규모 산업구조 개혁’을 선언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경제의 환부患部를 도려내겠다는 거다. 문제는 정부가 실직자를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지도 않은 채 ‘인력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배는 침몰하는 데 구명조끼도 주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실직자, 어디로 가야 할까.
▲ 정부가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인력 감축이 이뤄질 공산이 큰데도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은 미비한 상황이다.[사진=뉴시스]
정부가 구조조정의 칼을 들었다.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 갚기에 급급한 한계기업이 우리 산업 전반에 널려 있어서다. 이들은 이제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철수하거나 인수・합병(M&A) 시장의 매물로 내놓고 보유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늘 그렇듯 이 과정에는 불청객이 끼어든다. ‘명예퇴직’과 ‘대량해고’다. 특히 정부가 지정한 5대 취약업종인 조선・해운・철강・건설・석유화학 부문의 대량 실업은 무서운 현실이 됐다.

조선업계는 지난해 1만5000여명을 내보낸 데 이어 올해도 대규모 인력 감축 계획을 꺼냈다. 그럼에도 정부의 실업대책은 고용사정이 급격히 악화된 분야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지원하겠다는 방침 외에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구조조정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면 회사에서 잘린 이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거리에 나앉을지 모르는 이들이 기댈 언덕은 있을까. 우리나라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창업・자영업 시장이다. 하지만 이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자영업 종사자는 548만8000명. 자영업자가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6.8%에 이른다. 근로자 4명 중 1명은 자영업에 종사한다는 얘기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4%보다 11.4%포인트 높다. 

이마저도 개업했다 하면 폐업이다. 장기화된 경제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았기 때문이다. 영업자 10명 중 6명이 창업 3년 내에 문을 닫는다. 이 때문인지 자영업자들의 부채 잔액은 2010년 367조원에서 지난해 519조원로 5년 사이 41.4% 늘어났다. 

재취업 시장도 깜깜하긴 마찬가지다. 실업자에게 열려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단기・저임금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곳이다. 20 14년 통계청이 발표한 장년 재취업자 현황에 따르면 2013년 재취업에 성공한 장년층 199만8000명 중 임시직이 58만명(29.1%), 일용직이 33만명(16.5%)이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절반(45.6%)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운영하는 실직자 재취업 지원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각 시도에 있는 고용센터와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통해 실직자들의 재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국비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는 내일배움카드제, 최대 1년간 취업 관련 교육과 직업알선을 해주는 취업성공패키지 등이 대표적인 실직자 재취업 지원책이다. 문제는 교육내용이 실직・퇴직자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력 구조조정 신호탄

중견기업에서 30여년간 일하다 지난해 명예퇴직한 김남기(53)씨는 “학습 지도사 자격증・바리스타・자기소개서 작성법・면접방법이 나처럼 수십년 경력을 가진 사람이 재취업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말했다. 그는 지금 경기도 파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로 근무하고 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정부는 겉으로 보이는 취업률 올리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라며 “숙련된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퇴직금을 활용한 재테크도 여의치 않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남는 게 없는 ‘초저금리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중은행 1년 정기예금 금리는 1%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저축은행 정기예금 금리마저 사상 처음으로 평균 1%대로 주저앉았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베팅했다가 자칫 원금이 손실되면 말 그대로 ‘끝장’이라서다. 

활황이라는 부동산 시장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금리인하로 조건이 좋아져 매매수요가 늘긴 했지만 집값이 떨어지고 대출금리가 다시 오르면 어떤 혼란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물론 이마저도 퇴직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대기업 노동자에만 한정된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실업자를 위한 안전망 구축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만 통과되면 실업자를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 26일 언론사 간담회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발생할 실업자를 걱정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파견법이 통과되면 9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고  구조조정에서 파생되는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못 구해 힘들어하는 뿌리산업 중소기업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미정・강다은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