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활황 이유

곳곳에서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곡哭소리를 내뱉는다. 기업은 인력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이고, 가계도 먹고살기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하지만 불황은 남의 얘기라는 듯 ‘잘나가는’ 산업도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불황 속 활황산업을 살펴봤다.

▲ 불황이 장기화하자 새것을 사는 대신 고쳐 쓰고, 아껴 쓰고, 빌려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3월 7일과 9일, 정부와 경제연구원의 경제전망이 크게 엇갈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7일 “일부 지표가 최근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내수 전반은 악화되고 있어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틀 후인 9일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 보고서를 통해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침체를 우려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며 맞받아쳤다. 중국 경기 둔화, 미국 금리인상, 저유가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수출 부진이 완화되고,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 소비활성화 정책이 내수에 자극을 주면 시장에 활력이 감돌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시장 상황이다. 기재부의 ‘낙관론’을 받아들이기엔 생산과 소비가 말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생산은 전월 대비 1.2% 줄고 재고는 2.2% 늘었다. 투자(설비 -6.0%)와 수주(기계수주 -16.1%) 감소폭은 더 크다. 지난해에는 중견조선사인 신아SB(옛 SLS조선)가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뿐이랴.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는 산업 전반을 뒤덮고 있다.

소비 경기를 판단할 수 있는 내구재 소비도 지난 1월에 전년 대비 2.9% 감소했다. 체감경기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제심리지수(ESI)도 지난해 4월 101(기준 100)을 기록하더니 연말에는 91로 떨어졌다. 급기야 지난 2월에는 90선마저 무너져 89를 기록했다. 그만큼 경기 불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불황이 가계를 덮치자 소비자는 지갑을 여는 데 인색해졌다. 대신 자신의 소득 범위 안에서 만족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소비’가 떠올랐다. 이를테면 새것을 사는 대신 고쳐 쓰고, 아껴 쓰고, 빌려 쓰는 식이다. 애프터 마켓(after market), 리퍼브(refurb), 리스(lease), 렌털(rental) 등의 산업이 불황의 한복판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는 거다.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는 윤모(여ㆍ42)씨는 최근 중고물품을 기부받아 판매하는 ‘아름다운 가게’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었다. 예전 같으면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백화점이나 마트로 곧장 달려갔을 테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물가까지 올라서다. 윤씨는 말했다. “사실 ‘아름다운 가게’에 가보기 전까진 남이 사용했던 물건을 판다고 해서 내심 내키지 않았어요. 하지만 깨끗하게 손질돼 다시 판매되는 걸 보니 중고물품도 나쁘지 않았더라구요. 처음 갔을 땐 생각보다 손님이 많아 놀라기도 했어요.” 최근 윤씨는 그곳에서 예쁜 찻잔 세트(7000원)와 손가방(3000원), 아이의 겨울외투 한 벌(5000원)을 구입했다.

몇달 전 아빠가 된 서울 동대문구의 박모(남ㆍ33)씨는 아이 장난감을 구입하려고 알아보던 중 지인으로부터 “대여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싼 돈을 주고 사봤자 아이가 사용하는 기간은 얼마 안 된다는 ‘아빠 선배’의 조언이었다. 그 말을 듣고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3분의 1 가격으로 두달간 대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박씨는 아내와 상의한 끝에 장난감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달라진 소비성향 달라진 시장

이런 합리적 소비 성향은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해외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매년 늘고 있지만 증가폭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2012년 31.3%(이하 전년 대비 기준)라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기록한 뒤 내리막을 타더니 지난해엔 11.4%로 증가폭이 축소됐다. 올해부턴 한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 대신 리퍼브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BIS WORLD는 미국의 휴대전화 리퍼브 시장이 2020년까지 연평균 2.2% 성장해 시장 규모가 44억 달러(약 5조335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 불황과 합리적 소비성향이 맞물리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셀프숍이 주목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불황 속 활황을 맞은 리퍼브, 리스, 렌털 등 산업들은 언제까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을까. 전미영 서울대(소비자학) 교수는 “현재 호황을 누리는 시장은 앞으로도 전망이 밝다”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의 불황은 일시적이지 않다. 오래 전부터 계속된 불황으로 소비자의 성향이 변했다. 이 때문에 리퍼브, 리스 등이 유행처럼 반짝하고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 불황 속 호황 산업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셀프숍(인테리어?네일아트 등) 등이 대표적이다. 집 밖 소비를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스스로 해결하는 숍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불황과 합리적 소비 성향이 맞물려 앞으로도 이런 시장이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 100년만에 찾아온 불황. 이 무서운 녀석이 시장의 DNA를 바꾸고 있다. 불황 속 활황산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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