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vs 교육청, 누리과정은 왜 파국 맞았나

누리과정이 끝내 파국을 맞았다. 20일부터 누리과정 비용이 지원돼야 하건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으로 예산 편성이 들쭉날쭉하다. 주요 지역에서는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까지 편성하지 않았다. 유치원은 교사 월급이 밀리고, 아이들 간식까지 걱정하고 있다. 누리과정 시스템의 전면 재설계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 만 3~5세인 아동의 보육비를 지원하는 '누리과정' 사업이 정부와 교육청의 예산 책임 떠넘기기로 중단 위기에 처했다.[사진=뉴시스]

보육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2016년도 누리과정(만 3~5세 공통 무상보육 과정) 예산 편성이 들쭉날쭉해서다. 올해는 주요 지역에서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까지 편성하지 않았다. 어떤 시도는 아예 예산이 없고, 그나마 나은 데라고 해야 일부를 마련했을 뿐이다.

정부는 누리과정 파행 원인으로 예산을 미편성한 교육청을 지목했다. 근거는 전국 교육청 예산 점검 결과다. 이 결과에 따르면, 서울, 광주, 세종, 경기, 강원, 전북, 전남 등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시도의 전체 누리과정에 써야 할 재정은 총 2조2591억원이다. 반면 교육청이 활용 가능한 재원은 1조5138억원. 국고 목적 예비비, 지자체 추가 전입금, 결산잔액을 활용하고 과다편성한 인건비ㆍ시설비 등을 절감한 결과다.

교육청이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유보금 항목으로 확보한 9788억원을 합하면 총 2조4926억원이 된다. 이 결과로 본다면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제외하고도 2335억원가량의 여윳돈이 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 지원하라”며 생떼를 쓰고 있다는 거다.

이런 발표에 서울시 교육청이 발끈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시교육청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자체재원이 2331억원이라고 봤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이 돈을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쓸 수 없다고 반박했다.

교육부가 과다편성 했다고 보는 서울시교육청 예산인 인건비 610억원과 시설비 314억원은 교육사업 변동요인에 따른 필요경비이며, 전년도 재정 수입에서 쓰고 남은 돈 1407억원은 교육사업비와 교육환경개선에 사용할 재원이라는 설명이다. 나머지 6개 교육청도 보도자료를 내고 “누리과정 부족분 해결만을 위해 근거도 없는 엉터리 재정 추계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교육청은 정부의 누리과정 설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내국세의 일정 비율(20.27%)을 쪼개 교육청에 할당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2015년 누리과정을 교육청에 이관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교부금 전망이 엇나가면서 문제가 됐다. 특히 누리과정 예산이 모두 넘어오는 지난해 교육재정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결국 교육청의 지방채 규모는 지난해 10조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14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게다가 공약대로라면 올해는 누리과정 지원금이 22만원에서 30만원으로 뛴다. 그동안 월 22만원의 누리과정 예산은 총 4조원이었다. 공약대로 현실화하면 5조1000억원으로 더 오르는데도 정부와 시ㆍ도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핑퐁게임을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무나

문제는 이 다툼의 볼모로 우리나라 아이들이 잡혀 있다는 점이다. 유치원별로 차이는 있으나 보통 시도교육청은 매달 20일 교육지원청에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교부하고, 교육지원청은 25일 개별 유치원에 교육비를 내려 보낸다. 유치원은 이 돈을 교사 인건비, 시설비, 식비 등의 운영비로 사용한다. 유치원에 지원되는 교육비는 사립 29만원(누리과정비 22만원+방과후 7만원), 공립 11만원(누리과정비 6만원+방과후 5만원)이다.

서울지역 평균 유치원비는 지난해 2월을 기준으로 54만원가량이고 이 중 학부모들의 부담금은 32만1300원이다. 만약 유치원이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예산이 고스란히 학부모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학부모 입장으로선 적지 않은 부담이다. 게다가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의 고용마저 불안정해지면서 ‘보육대란’이 임박해오고 있다.

아이들을 볼모로 하는 재정 싸움을 멈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초중등 과정에서 유아까지 포괄하는 교육재정 ‘새 판 짜기’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계속 논의됐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인상하는 안, 양육수당처럼 국가보조금 비율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조정하는 방안, 국가책임 사업에 한해 전액 예산을 편성하는 등 다각도로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대안 없이 입장만 밀어붙이는 허술한 정책 싸움에 우리 아이들이 희생될 수 없어서다.


최정은 새사연 연구원 jechoi06@thescoop.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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