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표세진 비이소프트 대표

표세진 비이소프트 대표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가 성행하는 한 IT 강국은 모래성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은행의 비이소프트 ‘기술탈취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들이 “더 이상 기술 탈취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기를 바랐다.

▲ 표세진 대표는 게임 라이선스 사업을 하다 게임 케릭터 4000만원어치를 해킹 당해 날린 것을 계기로 개인정보 보호 보안솔루션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IT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벌어진 대기업의 보안기술 탈취 사건입니다. 말이 좋아 IT 강국이지 속은 이렇게 곪았어요. 모래성이나 다름없습니다. 미국 기업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신뢰를 잃어 회사 문 닫았을 거예요.” 표세진(49) 비이소프트 대표는 “반면 국내에서는 중소기업이 특허 기술을 자체 개발해 대기업에 제안했다가 빼앗겨도 저항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송을 걸어 이긴들 몇년 걸립니다.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영업손실, 재판비용 등을 감당할 길이 없어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어요. 결국 아무리 부당해도 슈퍼갑에게는 덤빌 수 없는 게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입니다.” 비이소프트는 지난해 3월 스마트폰 뱅킹 보안 솔루션 유니키를 개발해 우리은행에 사용해 달라고 제안했다. 유니키는 인증서, 보안카드, 계좌 비밀번호, 이체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모두 털렸어도 피싱, 파밍 그밖에 개인정보 해킹으로 당할 수 있는 모든 금융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보안 솔루션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금융거래를 하려면 사전 인증된 본인의 휴대전화로 은행 서버를 오픈해야 한다. 금융거래를 시작한다고 은행에 알리는 이 절차를 밟지 않으면 고객의 개인정보를 손에 넣은 해커는 물론 고객 본인도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 고객으로서는 처음 인터넷 뱅킹을 할 때 해당 금융사로부터 유니키 사용 승인을 받기만 하면 된다. 표 대표는 “해커 입장에서는 모든 개인정보를 해킹했어도 사전 인증된 고객의 휴대전화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며 “불법 금융사기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흐른 지난 4월 우리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전자금융거래를 사전에 제어할 수 있는 ‘원터치리모콘’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비이소프트가 지난해 우리은행에 제안했을 때부터 우리은행 측이 언론에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난 4월 6일까지 설명 자료를 제공한 유니키와 동일한 서비스였다. 우리은행 고객정보보호부 A차장은 4월 6일 비이소프트 김종국 부사장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에서 선인증(유니키의 핵심 아이디어)과 관련한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 우리은행 측이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날(까지도) 비이소프트에 특허출원 청구항(특허를 통해 보호받고자 하는 사항)을 요청한 이유가 뭐라고 보나요?
“자기들이 자체 개발했다고 발표를 하고도 내심 불안했을 거예요. 이미 네 번이나 그쪽에 준 설명서를 다시 보냈지만 청구항은 안 보냈습니다.”

미국 같으면 회사 문 닫을 일

우리은행 A차장은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 중인데 최신 해킹 기법에 대응할 수 있는 보안 솔루션 등을 추천해 달라”고 비이소프트에 요청했다. 비이소프트는 다시 한 번 유니키 설명 자료를 보냈다.

✚ 이 무렵 이미 유니키 기술 탈취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보나요?
“그렇게 시작이 됐을 거예요. 우리가 이미 7개월 전 제안해 비이소프트가 해당 서비스를 개발한 것을 알고 있었죠. 자기들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합니다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도 어떤 기술을 개발하려면 먼저 특허 조사와 선행 기술 조사를 합니다. 우리은행처럼 특허 출원도, 선행 기술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자칭 세계 최초로 개발한 특허 기술을 언론에 덜컥 발표하고 나서 사후에 특허를 출원하겠다고 하는 건 사업 하는 사람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난해 10월 우리은행의 요청에 따라 보낸 자료에 특허를 출원했다고 명시했거니와, 설사 그때 못 봤다고 하더라도 네이버에서 선인증 솔루션을 입력해 보면 우리가 이미 개발한 사실을 기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허청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다른 중소기업이 개발했어도 자기네가 개발했다고 발표하면 ‘을’이 별 수 있겠느냐는 ‘슈퍼갑’의 부도덕한 자신감이죠.”
▲ 표세진 대표는“피해액은 상징적으로 1000억원대”라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원터치리모콘에 대해 특허 출원을 하겠다는 입장인 우리은행은 뜻밖에 특허로 등록되면 해당 기술을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왜 이런 결정을 한 걸까? 표 대표는 “만일 돈 받고 팔겠다고 했으면 우리에게 제대로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 당일 우리와 계속 소통하면서 그렇게 결정한 것 같습니다. 남의 기술을 도용한 것도 부족해 영리를 목적으로 팔아먹으면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습니까? 훈훈해 보이고 싶었을지 모르죠.”

비이소프트는 핵심 솔루션인 유세이프온에 대해 일본, 중국, 홍콩에 3건의 국제특허를 등록해 두고 있다. 유세이프온은 실시간으로 화면을 모니터링하면서 하는 해킹을 막는 솔루션. 미국과 유럽연합(EU)에도 특허 2건을 출원해 놓고 있다. 국내 특허등록 건수는 12건. 비이소프트의 비이는 베스트 온 어스(Best on Earth)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지난 10년간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 기술에만 매달렸다. 표 대표는 그동안 개발비로 350억원가량 썼다고 말했다.

✚ 유니키에 대한 미국 특허 출원은 어떻게 돼 가나요? 다른 나라에서도 특허 출원을 하나요?
“미국 내 특허는 7월10일께면 출원 절차를 마칩니다. 다른 나라들은 지금 유니키를 서비스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고 자금도 부족해 특허 출원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허를 내면 출원료가 많이 들고 출원 후에도 유지비가 꽤 들어가요.”

✚ 미국 특허 등록은 보통 얼마나 걸립니까?
“제가 알기로는 한 8년 걸립니다. 미국은 일단 특허 출원을 하면 출원인에게 상당한 권리를 줍니다. 그래서 특허 등록 전이라도 얼마든지 사업을 펼칠 수 있죠.”

✚ 한국은 사정이 다른가요?
“우리나라도 출원일이 기준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출원 후 돈 많은 사업자가 특허를 못 내도록 특허무효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우리은행도 이번에 그렇게 나올 거로 예상합니다.”

✚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는 우리나라 특허당국을 믿습니다.”

피해액 1000억원대로 추정

✚ 우리은행의 원터치리모콘 서비스를 이용해 봤습니까? 우리은행 측이 아직은 등록이 안 된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입증하죠? 
 “우리 직원들이 이용해 보고 나서 분석했는데 우리 제품과 똑같다고 합니다. 변리사에게도 의견을 구했어요. ‘청구항대로 특허 등록이 된다면 우리은행의 원터치리모콘 서비스는 유니키의 발명 권리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서를 받았습니다. 사실상 우리은행의 서비스가 특허침해에 해당한다는 뜻이죠.”

✚ 유니키와 동일한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우리은행 측 발표로 입은 피해의 규모를 얼마로 추정하나요?
“유니키는 우리 직원들이 고생해 개발한 세계적인 기술로, 전 세계에서 우리만 갖고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상담이 이뤄지면 10억원을 제안하려고 했습니다. 금융사만 74사, 금융거래와는 관계없지만 개인정보를 갖고 있어 부정 접속을 막아야 할 곳은 더 많습니다. 피해액은 상징적으로 1000억원대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국내에서 1000억원대 소송을 내 그대로 받은 예는 없지만.”

그는 자사의 화면 해킹 방지 솔루션인 유세이프온의 경우 몇 억원대에 사용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은행의 자체 개발 발표 후 농협이 “우리은행처럼 우리도 같은 서비스를 자체 개발하려 하니 유니키 특허 청구항을 보내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요청 사유에 대해 유니키와의 특허 충돌을 피해 개발하려고 한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상식밖의 일이에요. 애플 직원이 삼성전자에 전화를 걸어 ‘양사 제품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앞으로 나올 갤럭시 S7 기술을 달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 유니키는 이제 팔 수 없는 서비스가 된 건가요?“
이 기술을 우리가 개발한 것이 확인돼 특허 등록이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번 싸움에서 우리가 이기면 그때부터는 우리에게서 사야겠죠. 그러나 우리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걸면 다른 금융사들도 우리 제품을 안 사려 들 겁니다. 금융권 보안 담당자들은 매달 만나 회의를 하는데 여기서 모종의 결정이 이뤄지면 우리 제품을 금융사엔 못 팔 수도 있어요.”

✚ 이런 돌발변수가 없었다면 특허 등록이 언제쯤 이뤄졌을 거로 보나요?
“우리나라는 1년6개월 이내에 대부분 등록이 됩니다. 늦어도 9월까지는 등록이 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은행이 소송을 걸면 지연될 수 있겠죠. 소송을 건다면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시인하는 것으로, 제 무덤을 파는 결과가 될 겁니다.”

그는 “우리은행이 원터치리모콘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포털에서는 찾을 수 없더라”고 말했다.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동시에 비이소프트에 유니키 설명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 사실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제 중소기업의 기술을 가로채면 안 되겠구나 하는 교훈을 대기업들이 얻기를 바랄 뿐입니다. 1000만 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갖고 있는 금융회사가 고객 개인정보 관리 비용으로 인당 100원도 안 쓰려 드는 풍토도 바뀌어야죠. 외국산 소프트웨어에 비해 국산을 홀대하는 풍조도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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