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복지, 바로 세우자

▲ 새 정부는 통일대박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개개인의 형편이 무슨 이유에서 대박나기 힘든지 성찰해야 한다. [사진=뉴시스, 더스쿠프 포토]
올해 ‘복지예산 100조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하지만 양적 확대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의 면면을 보면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찾기 힘들다. 특히 기초노인연금, 4대 중증질환 진료비 등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주요 복지 공약은 후퇴한 지 오래다. 과연 대한민국은 2014년 안녕(Welfare)할 수 있을까.

두 자녀를 둔 30대 중반 직장맘인 필자는 올해는 ‘안녕할 수 있을까’ 싶어, 확정된 나라 살림살이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에 눈과 귀를 쫑긋 세웠다. 새해를 넘겨서야 정해진 예산, 그중에서도 복지예산 106조원과 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24번이나 등장하는 ‘경제(활성화)’에 눈길이 갔다. 사실상 올해 예산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얼마나 지키는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특히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며 생애 맞춤형 복지의 틀 안에서 노인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총 진료비 국가부담, 반값등록금, 국가 책임 무상보육 등 굵직한 복지정책들을 내걸며 진정성을 강조했다.

물론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부의 공약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박근혜 정부의 1년은 실망 그 자체였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새 정부가 약속한 복지정책들은 줄줄이 파기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9월에 제안된 정부 예산안을 통해서도 복지공약 후퇴는 예견된 상황이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지난해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불러온 공약은 기초노인연금이다. 새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65세 이상 전 노인에게 일괄 2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후 100일이 지나자 기초노인연금은 소득하위 70% 이하로 대폭 축소되고, 이를 국민연금이나 물가와 연계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차등을 두겠다고 해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오히려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고, 통상 물가인상률이 평균소득의 증가보다 낮기 때문에 연금 수혜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게다가 이 기준이 5년마다 달라질 수 있고, 모든 재량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위임하는 기막힌 정책으로 변질됐다.

4대중증질환(암ㆍ심장질환ㆍ뇌혈관질환ㆍ희귀난치성질환) 진료비 국가 전액 부담은 대선후보 방송토론에서 첨예하게 맞붙었던 공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소 추계된 재정으로 비현실적인 안을 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4대중증질환 진료비 보장성은 75%로 높다. 다만 비급여 부문인 선택진료비ㆍ상급병실료ㆍ간병비가 가장 큰 규모라, 사실상 이 부분의 국가 부담 현실화가 열쇠다.

그러나 올해 예산에는 비급여 지원은 아예 생략했고, 고가항암제나 검사비 등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확대한다고 밝혔다. 공약보다 보장성이 축소된 것은 물론, 이 재정마저 건강보험 흑자분에만 기댈 요량이라 실현성이 의심스럽다.

복지예산 100조 시대, 그러나…

값비싼 대학등록금에 휘청거리는 부모와 청년들을 위해 새 정부는 반값등록금을 약속했다. 근본적으로 대학등록금을 내려야 하는 대학의 자구노력이 우선이긴 하다. 이 방향의 논의를 진행하되, 올해는 장학금 형태로의 지원이라도 선행돼야 하나 올해 정부가 마련한 예산은 필요 예산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그럼에도 새 예산 중 유ㆍ초등 자녀를 둔 입장에서 무상보육이나 초등 방과후 돌봄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말뿐인 무상보육을 현실화하기 위해 국가의 재정분담률이 애초 예산안보다 5%포인트 올라 15%로 상향조정됐다. 물론 지방정부의 추가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 무상보육 갈등의 불씨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또 다른 공약인 초등 방과후 돌봄에 국가 예산 1008억원이 배정되면서 불투명했던 정책이 조금은 가시화됐다.

어렵게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를 맞았다고 하지만 양적인 확대 안에서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문턱 없이 누릴 수 있겠다고 하던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은 포장만 그럴 듯했지, 내용은 없었다. 기초노인연금은 이미 소득계층에 따라 차등화하고,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역차별을 불러올 여지마저 주고 있다.

4대 중증질환 공약에 국민은 또 한 번 속았고, 대학등록금에 가계나 청년들의 고단함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무상보육 시대라고 하지만 보육교사의 노동권은 처우개선비 2만~3만원 인상에 기대는 수준이며, 초등 방과후 돌봄은 전국 전 초교 전면화 공약에 맞춰 돌봄교사의 처우개선이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노동 현안과는 연계되지 못했다. 오히려 저소득 자녀들이 이용하는 지역아동센터의 지원에 영향을 주면서 학교 안 돌봄 확대가 저소득 자녀들의 돌봄마저 어렵게 할 처지다.

▲ 박근혜 정부의 1년은 실망 그 자체였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새 정부가 약속한 복지정책들은 줄줄이 파기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박 대통령의 신년구상에도 핵심 공약이었던 ‘복지나 경제민주화’는 사라지고 ‘경제’가 수십 번 등장한다. 새 정부의 가시적인 성과 지표로 국민소득 4만 달러와 고용률 70%, 잠재성장률 4%가 제시됐다. 이 구상은 복지나 경제민주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민영화에 기초한 ‘경제 활성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철도민영화나 의료민영화는 국민의 반대가 극심한 사안이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은 장기간 철도파업의 원인이 됐다. 게다가 최근 설립된 KTX 주식회사는 상당수를 외주 인력으로 채울 방침이며, 운영이 어려운 노선은 민영화해 철도 이용권을 해칠 우려마저 높다. 의료민영화 역시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국민건강보험이 뿌리내려 있지만, 이미 영리화된 병원 진료가 늘어나면서 환자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의료 공공성의 토대가 축소되는 현실에서 의료 규제마저 완화해 영리자회사를 만든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야말로 의료민영화가 가속화돼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국민들의 고통이 커질 수 있다.

경제활성화, 내 삶은 나아질까

이제라도 새 정부는 ‘통일대박’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개개인의 형편이 왜 더 이상 대박날 수 없는지 성찰해야 한다. 글로벌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쌓여가도 국민 대다수의 가계부채는 줄어들지 않고, 고용률 70%를 달성한다고 한들 비정규직 일자리에 불안한 노동자들만 늘어나고, 잠재성장률 4%가 돼도 가난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지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말한 복지국가는 공약 몇 가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책의 면면에 99% 국민을 생각하는 복지의 철학을 녹여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새 예산이나 경제구상 어디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최정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 jechoi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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