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에 부는 구조조정 ‘바람’

▲ 금융권이 실적부진과 금융당국의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금융업계가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실적부진에 불법대출ㆍ부실투자 문제가 고구마 줄기 따라 나오듯 줄줄이 터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특별검사 등 금융감독당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한편에선 ‘지나친 압박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곪을 대로 곪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업계의 ‘이중고’를 살펴봤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린 12월 9일. 여의도 증권가와 을지로 은행가의 표정은 을씨년스러운 날씨만큼이나 어두웠다. 실적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금융업계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금융맨’이 모인 자리에선 어김없이 ‘실적부진’ ‘구조조정’이라는 두 단어가 화제였다.

구조조정이 가장 강력하게 추진되는 곳은 은행ㆍ증권업계다. 두 업계의 실적침체가 워낙 장기화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3회계연도 상반기(2013년 4월~9월) 증권회사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상반기 증권회사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보다 4229억원 줄어들었다.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비 62.6% 감소한 2516억원에 그쳤다.

대형증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한금융투자증권ㆍKB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는 실적부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대신증권과 하나대투증권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투자은행으로 지정된 KDB대우증권ㆍ현대증권ㆍ우리투자증권ㆍ삼성증권ㆍ한국투자증권의 실적 역시 부진했다. 특히 대우증권과 현대증권은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투자증권ㆍ삼성증권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60% 이상 감소했다.

대형증권사 가운데 그나마 양호한 실적을 거둔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이다. 그렇다고 실적이 개선된 건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의 당기순이익은 298억14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2%가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446억6200만원으로 12.8%가 줄었다.

증권사 부진의 원인은 주식 거래량과 거래대금의 감소에 있다. 증권사의 올해 일평균 거래량은 8년, 거래대금은 7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위탁판매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국내증권사에 거래량은 ‘돈줄’과 다를 바 없다. 그런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실적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위탁판매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매매수수료를 인하한 것도 ‘독毒’이 됐다. 여기에 채권금리까지 상승하면서 자기자본이익이 줄어들었다. 국내 전체 증권사의 상반기 자기자본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344억원이 감소했다. 증권사가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업계에 부는 구조조정 칼바람

삼성증권은 올 7월 과장ㆍ대리급의 직원 100여명을 계열사ㆍ관계사로 전환배치했다. KTB증권은 10월 구조조정을 통해 전체 직원의 20%에 달하는 100여명의 직원을 정리했다. 전체 직원 1600여명의 25%에 해당하는 450명을 감축할 계획을 세웠던 한화투자증권은 한발 물러나 구조조정 규모를 250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대리급 이상 직원의 급여는 20% 삭감할 계획이다.

은행업계의 수익성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금감원이 발표한 국내 시중은행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순이익은 4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7조5000억원의 58.9% 수준에 그쳤다. 이는 은행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예대마진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올 3분기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1.81%로 2009년 2분기에 기록한 1.72%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총자산이익률(ROA)과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하락세를 띠고 있다. 올해 1~9월 ROA와 ROE는 각각 0.32%와 4.08%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은행업계의 부진은 선진금융기술을 가진 외국계 은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올 3분기 적자를 기록했고 씨티은행과 HSBC은행의 당기순이익도 50%가 넘게 줄었다.

이런 맥락에서 은행업계가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HSBC은행은 소매금융 업무를 중단하고 본점을 제외한 10개의 지점을 폐쇄할 예정이다. 개인금융 부문에서 근무하는 203명의 직원도 명예퇴직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SC은행은 100개 지점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씨티은행은 올해에만 22곳의 점포를 폐쇄했고 희망퇴직 실시를 검토 중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희망퇴직과 함께 지점축소를 준비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내년 초 적자점포를 중심으로 55개의 지점을 정리할 계획이다.

증권ㆍ은행업계의 시련은 구조조정뿐만이 아니다. 금융당국의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1월 20일 중소형 증권사의 콜(call)차입을 금지하는 ‘금융회사간 단기자금시장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증권사의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콜차입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콜차입 금지의 영향은 중소형 증권사에게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콜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대부분의 증권사가 중소형이라서다. 가뜩이나 실적부진에 시달리는 중소형 증권사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압박책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권시장의 규모에 비해 증권사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경우 내실 있는 중소형 증권사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수ㆍ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은 대형증권사의 덩치만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업계를 향한 금융당국의 압박도 세지고 있다. 국민은행의 도쿄東京지점 부당대출 사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 C) 부실투자 문제, 국민주택채권 위조사건, SC은행ㆍ씨티은행의 고객 대출정보 유출 사건 등 각종 사고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의 도쿄지점 비자금 문제, 국민주택채권 횡령사건, 보증부대출 부당 이자 취득 의혹 등 총 세가지 사안에 대해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나의 시중은행에 3건의 특별검사가 실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나금융지주와 신한은행도 금감원의 종합검사와 특별검사를 받고 있다. 금감원의 은행권 압박이 시작됐다는 우려의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적부진과 금융당국 압박 ‘이중고’

은행업계 관계자는 “국민은행 비리사건에서 보듯 은행의 내부규제망에 구멍이 뚫린 건 큰 문제”라면서도 “하지만 시중은행 스스로 밝혀내고 시인한 사안에 대해 특검까지 실시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에 직접적인 재제를 할 수 있음에도 언론을 이용해 군불을 뗀 뒤 감독을 강화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감독당국이 시중은행 감사를 매년 충실히 했다면 최근 불거진 사건이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 특검을 하는 건 금감원 스스로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4대 금융지주사에 대한 특검도 이뤄지고 있다”며 “부실감독의 책임을 회피하고 금융권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익명을 원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최근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은행의 비리ㆍ부실 사건이 국내 은행업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을 쇄신의 기회로 삼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관리ㆍ감독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전했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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